김 인 호 (의원문제연구회 회장/서울시의사회 고문)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가 탄생했다. 축하하면서도 한편 우려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기존 의료제도가 의료계를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을 위한 명목으로 무상 의료의 틀을 정착하려는 의도가 공약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무상이란 의미는 국가가 부유하다는 의미이거나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하려는 것이다. 공산체계의 몰락이 보여주듯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상으로 대체하는 건강 보험은 활동기의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가중시켜 결국 경제부담 공포로 적극적 삶의 목표를 붕괴시키게 된다. 적정 진료를 표방했던 초반기 의료보험이 현재는 오직 진료비 절감을 위한 정책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으로 일관되고 있어 의료계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개원의 축이 무너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특히 새 정부의 인수위가 의료 전반에 대한 방향의 키를 이어 받을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을 확인해 본다.

첫째, 건강보험 강제 지정 제도를 임의 계약으로 변경하도록 재고해야 한다. 이는 38년 전에 설치한 비민주적 의료인 장악행태의 일환으로 반드시 시장경제원리로 접근해야한다. 영리법인병원 설립을 정부주도로 용인하고 있는 시대에 국민과 환자의 선택권을 억압하고 있는 대표적 관치(官治)의료이다. 의료인을 정부하수인으로 만들어 국민으로 하여금 의사는 의료시혜자의 일부로 각인시켜 놓아 의료시장을 왜곡되게 한 주범이다.

둘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개념 재정립과 의결 구조에 대한 규정변경이다. 이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의 개정입법안 발의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부 주도로 심의안 의결을 끌고 가는 것은 상대축인 의료계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선심성 계약과 부대조건 수용을 요구하는 것은 의료계 전체를 의료비 절감만의 큰 틀로 끌고 가려는 저의를 내 보인 일방적인 위원회 운영 방안임은 위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셋째, 의료전달체계의 정립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원래 ‘큰 병 아니면 동네의원에서 치료한다.’라는 국민정서가 있었는데 무상의료 개념이 확산되고 차량문화가 접근성을 쉽게 하고, 빅5의 대형 종합병원의 기업화한 호텔식 비즈니스 운영과 맞물려 건강검진, 만성 소모성 대사질환, 가벼운 호흡기, 전염성, 알러지 등 일차성 질환 환자들이 편법으로 너도 나도 대형병원 외래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진료의뢰서 발급으로 제도가 되어 있다지만 허울뿐 이다. 의뢰된 환자마저 일차 개원의에게 회송하는 것이 드물고 3차 병원에서 관리하는 지경이다. 강제지정제를 실시하며 요양기관별 종별 가산제를 시행하는 제도에서 의료비 절감의 가장 큰 효율적 장치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임을 인식하고 이번 정부는 그 정착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넷째, 성분명 처방을 명분으로 대체조제를 확대하려는 의료비 절감정책 시도를 근절해야 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의사는 처방으로 말한다. 그 처방은 의사의 판결문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진료와 치료를 배우는 전공의 때부터 처방약의 성분과 용량과 함량에 경험되어 있다. 쉽게 말해 의사는 처방약 각각에 오래동안 필이 꽂혀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 의사의 평생 처방의 근간이 된 것인데 동일제재라도 생동성 시험을 거치지 않는 품질의 약제로 대체하라는 것은 처방을 기성품화 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극소량으로도 치료의 반응을 달리하는 환자상태를 무리하게 변경하여 대체하려는 약품절감은 의료의 본질을 훼손할 것이다.

다섯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의 합리성이다. 민주당 김용익 보건 복지위원은 ‘돈 보다 생명이 먼저인 의료’를 주장하며 무상의료의 개념을 휴머니즘으로 포장하고 나섰다. 일견 공감하는 바가 있으나 그것은 국격에 어울리는 재정이 확립되면서 끌고 가야함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통계로 현재 63%의 보장 율을 90%까지 확대 하려면 최소 14조원(1%에 5천억으로 보고)정도 소요되므로 재정적자는 명약관화 한 사실이다. 과거 소아입원비 무료와 병원식대 보장확대로 감당하지 못한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대선공약은 생색내기 선심성 포퓰리즘이 많을 수 있다. 인구 노령화, 병원 문턱을 낮추어 가수요 급증, 편의점식 의료 이용행태 등으로 단순 보장성 강화 확대는 그 자체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진료왜곡을 야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본인의료 부담 백만 원 상한제’란 구호 역시 환상적인 혜택이다. 그러나 37조 현 급여총액에서 이 역시 10조원 정도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고, 환자들의 입원 재원일수 증가, 진료의 질적 저하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여섯째, 일차의료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 대학병원 급 3차 종합병원을 이용하는 환자 중 실제 일차 진료로 해결될 수 있는 질환이 과반수를 넘는다고 한다. 일차 진료의사는 다양한 임상경험으로 진료를 단순화 시켜 검사를 줄이고 정밀 진찰과 열성 치료로 대체 한다. 그것은 복잡한 현대 의료가 최신 전자의료기기에 의존된 소모성 진료 행태의 확대로 의사의 전문성 자체를 무시하고 있다. 정성스러운 의사보다 현대기기와 검사를 선호하게 되는 국민의 의료관행이 의료비 증가의 가장 큰 문제점임을 이해하고 일차의료, 골목 상권을 활성화 시키는 방향으로 정책 연구가 필요하리라 믿는다.

일곱째, 공공의료의 확충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건소, 보건지소의 질병 진료를 근절시켜야 한다. 각 시군구 자치 단체와 그 지역 구성원과 전문가 집단은 맡은 바 역할을 분담하고 그 역할에 사명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빵집이 적고, 야채가계 없다고 자치단체가 빵을 팔고, 야채를 팔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만큼 건강보험체계가 정착된 나라가 얼마나 있는가. 보건소는 자유 경제 체제에서 그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인지하도록 하고 공산체제의 획일화로 지역 주민의 환심을 사려는 저급한 행정체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새 정부는 의료의 큰 틀을 국민 환심을 사기 위해 곳간(庫間)을 비워 가며 퍼 주고 질주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남부유럽의 사례를 명심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합리적인 의료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무상의료 보장성 강화 같은 시혜의 확대보다는 한정된 재정으로 국민과 배분하는 의료의 효율화가 우선이다. 무엇보다 질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 차원에서 일차의료의 다양한 역할을 분담시켜, 임상의사의 활로, 의료의 질 향상과 의료비 절감정책이 서로 보완하는 터전을 구축하여 두 수레바퀴가 잘 맞물려 갈 정책을 마련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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