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김 우 호

제가 본과 1학년때인 1976년도 미국 하바드대 교수를 그만두시고 귀국하신 선생님은 그 당시 학생들에게 여러모로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농구를 하시는 친밀감을 보여주시고, 학생들이 연구실에 와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시며, 유창한 발음의 명강의에 학생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교수님이셨습니다.

제가 병리과에 입국할 때는 제법 경쟁이 심했는데, 아마도 선생님의 영향이 컷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81년 전공의 1년차를 시작하면서 병리진단의 철두철미한 면 뿐만 아니라, 부검에 대한 마음가짐을 일깨워주셨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엄청난 논문 집필 의지를 보며 배우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과 집담회나 병리학회 집담회에 빠지는 법이 거의 없으셨고, 모든 증례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수많은 논문을 집필하시면서도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을 항상 유지하셨고, 필요한 서류철을 즉시 찾아내는 치밀함과 시간 약속에 결코 늦는 법이 없으신 점도 제자들이 선생님을 항상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소아병원이 생기면서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소아병리학의 학파를 창설하셔서 많은 문하생을 배출하신 점은 우리나라 병리학의 큰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소아부검을 통해 우리나라 소아의 형태학적 정상 범위가 확립되었고, 우리나라의 선천 기형에 대한 증례가 집대성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께서 과장이실 때 제가 의무장으로 일하면서 교실을 운영하는 리더쉽을 익힌 것이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회갑과 정년 퇴임시, 그리고 퇴임후 10년째에 기록을 정리하는 책자를 만드시면서 후배들의 도움을 마다하시면서, 모두 손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시는 노고에 죄송함을 느꼈습니다.

퇴임 후에도 많은 좋은 조건을 마다하시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곳을 고집하시면서 인천까지 매일 출퇴근 하신 것을 보면 선생님이 연구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항암치료로 힘드신 중에도 강연과 집필을 계속하시는 열정에 후배들이 숙연해집니다. 지난주 저희교실 동문회 모임에 참석하셔서 근황과 함께 교실을 위한 좋은 말씀 해주신 것이 아직 귀에 쟁쟁한데, 갑자기 저희 곁을 떠나신다는게 믿기지를 않습니다.

저희 서울대학교 병리학교실 식구들은 모두 허탈하고 참담한 마음입니다. 다행스럽게 선생님의 기록과 역사는 그 무엇보다 잘 정리되어 있어 항상 저의 곁에 있을 것이며, 선생님의 업적과 열정, 그리고 격려는 병리학 교실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선생님이 계실 때처럼 곧바르고 열심히 살아갈 것을 선생님의 영전에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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