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례 때 희생·집안 재신 상징 동물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밝았다. 육십간지 중 36번째인 기해년은 황색(노란색)을 의미하는 기(己)와 십이간지 중 돼지를 뜻하는 해(亥)가 결합한 말로 ‘노란돼지의 해’를 뜻한다.

십간의 기(己)는 땅(土)의 기운을 상징하는데 땅은 ‘황(黃 누를 황)’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돼 황금돼지의 해라고도 불리며, 길운을 찾고, 재물복이 많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돼지는 재물이 넘치고 큰 복이 온다는 속설이 있어 돼지해에 태어나면 재물복이 넘치고 길하게 산다고 봤기에 돼지꿈은 용꿈과 함께 최고의 길몽으로 여겨진다.

돼지는 십이지신 가운데 마지막 동물로 방향은 북북서(北北西), 시간은 오후 9시부터 오후 11시를 나타낸다. 달은 가을 10월, 계절은 10월 입동에서 11월 대설 전날까지이며 오행은 수(水), 음양은 음(陰), 대응하는 서양별자리는 전갈좌에 해당한다.

지금은 게으름을 나타내는 동물로 인식되지만, 전통적으로 돼지는 성(聖)과 속(俗)을 넘나든 건강한 존재로 잡귀를 몰아내는 신장(神將)이자 인간과 가까운 친구로 사랑 받았다.

돼지가 가축화된 시기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약 4,800년 전, 유럽에서는 약 3,500년 전이다. 예로부터 돝 또는 도야지로 불려왔으며, 돼지라는 명칭도 돝아지(도야지)가 변해서 된 것이다. 한자어로는 저(猪)·시(豕)·돈(豚)·체(彘)·해(亥) 등으로 표기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1,000여 품종이 있는데, 용도에 따라서 지방형·가공형·생육형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돼지는 유럽 중·남부와 아프리카 북부에서 야생하는 유럽산 멧돼지, 중국대륙 동부에서 우수리강 유역에 걸쳐 살고 있는 멧돼지, 동남아시아 멧돼지 등이 가축화된 것으로, 가축화되면서 각 지역마다 독특한 재래종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의 재래종 돼지는 중국의 멧돼지 또는 동남아시아의 멧돼지에서 유래됐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삼국지’ 부여조에는 저가(猪加)라고 하는 관직 명칭이 있었고, 한조에는 ‘또한 호주에서는 소 또는 돼지를 기르기를 좋아한다(又有胡州好養牛及猪).’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약 2.000년 전에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재래종은 조선시대 말엽까지 사육돼 오다가 외래종이 도입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됐다. 재래종 돼지는 흑색으로 몸이 작고 주둥이가 길며 체질이 강건해 질병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다. 주로 산간지방에서 사육됐으나 최근에는 그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됐다.

돼지는 신화(神話)에서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동물, 제의(祭儀)의 희생(犧牲), 길상(吉祥)으로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을 상징한다.

이 때문에 돼지는 예로부터 소와 더불어 동제(洞祭) 등 각종 제사에서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제사용 희생동물로 매우 신성시 됐다.

서기 1세기 중국 후한의 사상가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 기록된 부여의 건국신화에는 부여를 건국한 동명(東明)을 돼지가 입김을 불어넣어 죽지 않았다고 기술됐다.

부여의 건국신화와 유사한 고구려의 건국신화에도 부여국의 돼지가 등장하는 등 부여는 돼지와 깊은 인연을 가진 나라였다.

부여는 말, 소, 개, 돼지 등의 이름을 따서 마가(馬加), 우가(牛加), 구가(狗加), 저가(豬加)의 관명(官名)을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돼지 이름을 딴 저가(豬加)가 있었다. 부여는 소, 양, 개, 말과 함께 돼지를 키웠고, 가축을 잘 기르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희생으로 교시(郊豕)에 관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오늘날에도 무당의 큰 굿에서나 동제(洞祭)에는 돼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다. 굿에서는 돼지머리만을 제물로 쓰는 경우가 많고 동제에서는 온 돼지를 희생으로 사용한다. 돼지는 지신(地神)의 상징으로도 인식됐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상해일(上亥日)에 궁중에서는 나이가 젊고 지위가 얕은 환관 수백 인을 동원해서 횃불을 땅위로 이리저리 내저으면서 ‘돼지 주둥이 지진다’고 하며 돌아다니게 했는데, 이는 풍년을 비는 뜻이라고 했다.

돼지에 관한 속신(俗信)도 많이 있다. 임신 중인 여자가 돼지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피부가 거칠고 부스럼이 많다고 하며, 산모가 돼지발을 삶아먹으면 젖이 많이 난다고 한다.

또한, 돼지꼬리를 먹으면 글씨를 잘 쓴다고 믿으며, 꿈에 돼지를 보면 복이 오고 재수가 있다고 한다.

돼지꿈은 재물이 생길 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돼지를 지칭하는 한자의 음이 돈(豚)이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있다.

속담에는 돼지가 더럽고 우둔한 동물로 나타난다. 결함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결함이 적은 사람을 나무랄 때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 나무란다’고 하고, ‘그슬린 돼지가 달아맨 돼지 타령한다’고도 한다.

돼지는 목청이 크고 거칠어서 이와 관련된 속담도 생겼다. 듣기 싫은 노래를 크게 부를 때 ‘돼지 멱 따는 소리’라고 핀잔을 주고, 컬컬하게 쉰 목소리를 ‘모주 먹은 돼지청’이라 한다. 돼지에 관한 설화로는 최치원의 출생담으로 알려진 금돼지 또는 미륵돼지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돼지꿈 해몽’이라는 설화도 널리 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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