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말초 혈관에는 혈류에 섞여 있는 해로운 물질이 뇌 조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검문소'인 혈뇌장벽(BBB: blood-brain barrier)이 있다.

혈뇌장벽은 특정 혈관벽에 특수 세포와 물질들이 밀집해 마치 '지퍼'(zipper)처럼 단단하게 조여진 곳으로 중요한 영양소만 선택적으로 뇌로 들여보내고 해로운 물질은 차단하는 한편 뇌의 노폐물을 내보내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뇌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물도 뇌에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최초 신호는 이 혈뇌장벽의 누출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의대 신경유전자 연구소(Neurogenetic Institute) 소장 베리슬라프 즐로코비치 박사 연구팀은 치매는 주범으로 알려진 뇌 신경세포의 독성 단백질 베타 아밀로이드의 응집(plaque)과 타우 단백질의 엉킴(tangle)과 관계없이 혈뇌장벽 누출이 독립적인 위험요인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14일 보도했다.

인지기능이 정상인 노인 161명을 대상으로 5년에 걸쳐 각종 테스트를 통해 인지기능을 평가하면서 뇌 영상 검사와 뇌척수액 분석을 통해 혈뇌장벽의 투과성(permeability)을 측정한 결과 인지기능 저하와 혈뇌장벽 누출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특히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hippocampus)로 들어가는 말초 혈관의 누출을 살펴봤다.

그 결과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말초 혈관의 혈뇌장벽 누출이 가장 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연관성은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등 두 가지 뇌 단백질 이상과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비정상 뇌 단백질이 있든 없든 인지기능 저하의 정도는 혈뇌장벽 누출의 정도와 일치했다는 것이다.

혈뇌장벽 누출은 완전히 별개의 독립적인 과정이거나 치매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치매는 뇌 신경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가 응집해 플라크를 형성하고 뇌 신경세포 안에 있는 타우 단백질이 잘못 접혀(misfold) 서로 엉키면서 신경세포를 죽임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두 가지 비정상 뇌 단백질을 표적으로 치매 치료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다. 그 결과 여러 치료 물질이 개발됐지만, 임상시험에서 모두 실패했다.

앞으로도 이 두 가지 비정상 뇌 단백질에 대한 공략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기에 혈뇌장벽 누출 같은 혈관 생물표지(vascular biomark)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연구팀을 지휘한 즐로코비치 박사는 강조했다.

치매의 성공적인 치료는 결국 여러 가지 표적을 겨냥하는 약물들의 혼합 투여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의 의학전문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최신호(1월 14일 자)에 발표됐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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