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화상투약기, 약사는 ‘없고’ 대통령 의중만 ‘있어’…“설익은 정책”
국민 위한다면 국내 보건의료 인프라 효율적인 활용법부터 찾아야

최근 약사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원격화상투약기 도입 논의가 일단은 무산됐다. 정부가 규제 완화라는 명목 하에 은근슬쩍 재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약업계는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약사사회에서는 정부가 다시 강행 의지를 보이더라도 ‘의약품 대면 판매 원칙’ 훼손을 우려하는 약사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매력적인 당근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의약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자 이를 계기로 원격의료를 전방위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6년 약사사회를 뒤집어 놓았던 원격화상투약기 이슈가 최근 다시 재부상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달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원격화상투약기 도입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비대면 의약 서비스 확대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 여세를 몰아 정부는 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에 원격화상투약기를 안건으로 올려놨다.

하지만 대한약사회의 강력한 반발과 여당의 반대로 심의 하루 전날인 지난달 29일 안건 상정을 전격 취소했다. 복지부가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앞세워 국회는 물론 관련 직능단체와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원격화상투약기 도입을 추진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그동안 국회와 약사사회가 원격화상투약기 도입을 반대한 주요 쟁점 사안에 대해 이해당사자들과 협의를 하거나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공공심야약국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발언을 하며 약사들의 공분을 배가시켰을 뿐.

약사회 관계자는 “2016년 원격화상투약기 관련 약사법 개정안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와 관련한 해결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면서 “최근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비대면 산업 선도국가로 이끌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청와대와 관련 부처들이 무리수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원격화상투약기 도입이 현실화 될 경우 온라인 일반약 판매, 조제택배를 비롯해 원격의료 등의 단초가 될 수 있는 만큼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약사사회는 이 같은 정부의 태도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토로하고 있다. 원격화상투약기가 정부의 바람대로 실증특례를 적용받더라도 결국 투자와 운용의 주체가 되는 약사의 전향적 자세 없이는 상용화되기 어려운데 왜 이렇게 무리하게 강행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그러면서 정부가 협의없는 일방통행식 정책 추진의 부작용과 의견 수렴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현재 약사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대면 판매 원칙 훼손이다. 원격화상투약기가 도입되면 약사법 제50조 제1항(약국 개설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는 본인의 약국이나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이 무력화 되면서 결국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

약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병의원과 약국 인프라는 인구 비율로 봤을 때 세계 최고 수준이다”며 “정부가 의약서비스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이 같은 보건의료 인프라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 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정부의 행보를 보면 국민건강이라는 미명 아래 산업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국민을 위한다면 원격화상투약기는 절대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정부가 특정 직능단체를 의식하지 말고, 가용한 국내 보건의료 인프라 활용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보건의료 서비스는 편의성과 접근성이 아닌 안전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병의원과 약국 수는 많지만 주말이나 심야시간대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원격화상투약기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며 “만약 병의원이 문을 닫은 이후부터 오픈 전까지 의약분업예외지역처럼 약국에서 제한적으로 전문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정 직능단체의 반발이 있겠지만 편의성과 접근성은 물론 안전한 약료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서 “특히 약국 과포화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약사들에게 새로운 틈새시장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 논란이 끊이지 않는 편의점 안전상비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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