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별 약물관리 구조 마련 급선무…전담약사제 대안 ‘주목’
분업 자체 부정은 ‘금물’…전문성 개발과 정부 지원이 ‘관건’

의사와 약사의 직능 간 전문성이 강화되는 의약분업이 실시된지 20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약분업에 대한 다양한 이견과 반론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20년을 맞고 있는 의약분업에 대한 평가와 함께 분업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본지는 박혜경 한국의약품정책연구소장을 만나 의약분업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올바른 안착을 위한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박혜경 한국의약품정책연구소장
▲ 박혜경 한국의약품정책연구소장

≫ 의약분업에도 약물 오남용에 대한 회의론이 여전하다.

의약분업을 시행해서 약제비가 높아졌다는 말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어렵다. 다만 약을 쓰는 관행적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처방되는 약의 수가 많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꼽을 수 있다.

고혈압약 처방 시 소화제를 기본으로, 관련 처방약 개수만 평균 5개 정도다. 외국의 경우 1~2개의 약이 처방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불필요한 약들이 많이 포함됐다는 말이다.

정책 자체도 약에 대한 높은 마진율로 인해, 많이 처방할수록 돈이 많이 벌리는 구조다. 의사들은 약을 많이 처방할수록 이익이 크기 때문에 의약품을 많이 권하게 됐고 환자들 역시 약을 줄이면 효과가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기존의 구조에 저항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환경들이 맞물리면서 의약분업에도 불구하고 약물 오남용의 문제가 여전히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분업 이후에 약 처방개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멀었다.

지난 2006년 정부는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통해 약제비를 줄이려는 시도를 했다. 다만 약 개수를 줄이려는 노력 보다는 약가를 줄이는 것에 치중했고 그 결과 약가만 내려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약 수량과 가격을 동시에 낮추는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야만 효과가 있는데 결국 실패한 것이다. 유일하게 성공한 부분이 항생제 처방 공개로 처방률을 줄이고 항생제 내성율을 잡은 것이다.

분업정책은 나에게도 이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인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야 한다.

누구나 손해보는 제도에는 공감을 안하려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득을 취하면 다른 사람이 손해보는 상황이 아닌, 누가 이득을 취해도 전체적으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우리나라가 이런 고민들을 해볼 시기라 생각한다.

≫ 해외 의약분업 사례에 대해 설명해달라.

분업을 안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이미 오래전에 임의분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완전분업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특히 유럽 법은 법조항에 명확한 문구가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관행법으로 자연스럽게 완전분업 형태를 유지하는 경향이 크다. 강제성이 없는데 어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정도가 분업이 안 된 나라였다.

이 중 일본이 제일 먼저 분업을 시작했고 유럽방식에 따라 강제성을 띄지 않았다.

공립병원들은 분업을 강제화했지만 일반 병원들에게는 계속 분업을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도록 처방 시 병원에 수가를 더 주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형태를 취했다. 일본의 분업률은 현재 90%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의분업을 하는 나라는 대만이 유일하다. 직능분업은 편의성 측면에서만 장점이 있다.

대만은 편의성에 강점을 두고있는 직능분업을 선택했고 의료기관에서 약사를 고용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 결과 ‘분업에 실패했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의·약사 간 갈등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의약사간 갈등구조는 의약분업을 강제화했기 때문에 야기된 문제들이다. 처음부터 프레임 자체를 잘못 잡은 것이다.

분업 전인 80년대에 시행된 의약분업 시범사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분업 당시 시범사업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사업에 참여하는 의사와 약사에게만 분업 여부를 정하게 했던 것이 문제였다. 의약분업이 바람직한 방향임을 인지시키고 분업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부분이 중요했는데 이 부분이 잘 안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의·약사 사이에서 방향성을 제대로 제시하면서 임의분업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보다 완전분업 형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분업 시행을 의·약사 간 업무로만 구분하려 했기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분업 이후에도 잡음이 있을 때마다 의·약사만의 대립각으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면서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의약분업은 프레임을 잘못잡은 측면은 있지만 그렇다고 분업 자체를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된다. 의약분업이 문제가 있어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려야 한다면 외국 사례에서도 이미 완전분업형태를 취하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의약분업 재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분업 20년이 흐른 지금은 애초에 의도한 의약분업 목적으로 잘 가고 있는지, 그 취지가 잘 살려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많은 제도의 변화들이 있었는데 그 중 분업과 관련된 내용들만 선별하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선 약제비 증가가 분업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연결짓기도 하지만 이를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지 대해선 의문이다.

분업을 평가하는데 있어 이런 것들은 무척 제한적일 수 밖에 없고 또한 변수가 많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구체적인 수치를 갖고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다만 의약분업에 따른 재평가를 해야만 한다면 장기평가로 의료 질에 대한 평가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사단체의 경우 약사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부터 평가해야 한다. 의약분업의 취지 자체가 전문가의 역량을 강화시킴으로써 역할을 극대화 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이 부분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약국들은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의료기관 옆으로 이동했고 병원 옆에서 의사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현실이다.

심야약국 필요성에 대한 부분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처방조제는 약국 매출의 80%를 넘겼다. 이는 약국의 주 수입원이 병원이고 일반환자가 안온다는 의미다.

그러나 심야약국에 대한 수요는 일정부분 있다.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판매도 그런 역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처방조제가 없는 심야시간을 연장해 약국 문을 연다는 것이 수익 측면에서 맞지 않을 뿐이다.

의약분업 당시 지방의약품처방목록이 활성화되지 못한 부분은 조금 아쉽다. 시범사업도 잘 이뤄졌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사 파업이 결국 지방의약품처방목록 활성화를 막았다. 만약 목록이 활성화됐다면 약국들이 의료기관 옆으로 이동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모형은 환자마다 전담의사와 전담약사를 지정해놓고 진료와 약물관리를 진행하는 주치의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원들마저 전문화 돼 있고 주치의 제도에 대한 사회 공론화도 안 돼 무척 요원한 상황이다. 따라서 여러 병원에서 나오는 처방들에 대한 약물관리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부분이 급선무다.

우리나라 약사사회는 의약분업 당시 약사역할에 대해 세부적으로 개발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기존에 주치의제도로 괜찮은 대안도 제시됐지만 의료계의 삐딱한 시선으로 결국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따라서 약국을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단골약사제도와 건강서포트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건강서포트약국은 우리나라 세이프약국과 비슷한 사례로, GPP약국(건강증진협력약국)처럼 다양한 서비스를 해주는 약국을 의미한다.

단골약사제도는 약국과 상관없이 개별 약사가 환자를 한 명 등록하면 그 환자의 모든 약은 해당 약사가 관리한다. 단골약사를 통해 약을 처방·조제하게 되면 환자에게는 할인을, 약사에게는 수가를 주는 방식이다.

약사사회는 이런 해외 사례들을 통해 장기적으로 약사역할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 모두를 위한 의약분업의 방향성을 제시해달라.

우리가 무언가를 추진할 때 목표를 잡아야 한다. 제도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목표를 설정해놓지 않으면 방향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의 목표는 국민들이 건강하게, 필요한 약만 먹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가 설정됐다면 제도가 헷갈려도 국민건강에 좋은 일인지 여부만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중간 단계가 헷갈리더라도 목표만 잃지 않는다면 단계별로 올라갈수록 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의약분업은 제대로 진행돼 왔다. 국민들도 심한 반항은 없다. 당초부터 어느정도의 불편함은 있을 것이라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안전성을 얻기 위한 일정부분의 불편함이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외국사례를 통해서도 검증됐다.

따라서 ‘불편해서 안해’가 아니라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걸 안하면 안돼’라는 생각이 들도록 방법론을 제시해줘야 한다. 불편함도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상대방에 대한 이득이 고려돼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환자들의 이득은 수치적으로까지 나타나진 않는 만큼 직접적인 증명은 어렵다. 그러나 의사와 약사,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려는 노력들이 자발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을 전문가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지지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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