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마저 등지고 거리 나선 의사들…환자는 ‘분통’
암 수술 연기, 외래 진료 축소 등 환자 피해 사례 잇따라
의-정, ‘환자’ 앞세워 자기 주장 되풀이…정작 환자는 ‘뒷전’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정책을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중간에 낀 애꿎은 ‘환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의료계의 집단 휴진에 급기야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 대응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까지 파업 참여를 시사하고 있어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들의 피해는 계속될 전망이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계 집단 휴진으로 응급환자 2명이 의사를 찾지 못하거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

지난 26일 부산에서는 약물 중독 환자가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13개 병원에서 거절당하다 3시간 만에 울산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날 숨졌다.

28일에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관내 병원 4곳을 떠돌다 병상 수용 불가 통보를 받고, 경기도 양주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응급수술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으며, 외래 진료도 축소됐다.

의료계와 정부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극한 대립을 이어가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 중인 한영희(35세, 가명) 씨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시아버지의 수술 날짜가 당초 8월 27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다. 짧게는 몇 주 길면 몇 달 뒤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전달받았다”면서, “항암 수술의 경우 전이 상태, 진행 속도에 따라 예후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의사 파업으로 인해 수술이 늦어져 결과가 안좋아 진다면 그 피해는 누구한테 보상받아야 하느냐”고 성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0일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 긴급비상대책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원점 재논의 명문화를 거부하고 임시방편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정부의 행태에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

대한의사협회 역시 정부가 의료계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오는 9월 7일부터 제3차 전국의사 총파업을 무기한 돌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정부도 강하게 대응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10명의 전공의들을 고발하는 한편, 이탈 전공의와 전임의의 행정처분과 고발 조치가 지속됨을 예고한 것.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급본부 손영래 전략기획반장은 30일 오후 정례브리핑을 통해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따른 국가 의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우선적으로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긴급한 응급실과 중환자실부터 법적 절차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의대 교수도 파업 참여를 시사했다.

고발을 당한 전공의 소속 병원 교수들이 전공의 불이익이 현실화될 경우 집단 사직을 비롯해 모든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

더욱이 정부가 업무복귀명령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방 수련병원에 현장조사를 벌이자 해당 병원 교수들은 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 피켓을 들고 저항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계와 정부의 끝 모를 갈등에 환자들의 피해가 속출하자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나섰다.

환자단체연합회는 대전협에 진료 현장 복귀를 촉구하며 간담회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환연은 대전협과의 간담회를 통해 추후 진료 거부 의료기관의 고발 여부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환연 관계자는 31일 메디코파마뉴스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정부로서도 의료계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의료계는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며 “대전협과의 간담회를 요청한 만큼 향후 추이를 지켜보고 파업 의료기관에 대한 고발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환연 입장에서 파업 의료기관을 고발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특정 병원을 상대로 고발장을 낼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환연 관계자는 “의료계 파업으로 인해 피해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밖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파업이 끝난 후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환자 단체가 의료기관이나 의료진을 고발하면 법적, 행정적 조치로 인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의료진이 힘들어진다. 결국 환자들이 제 때 진료를 받을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사들이 환자들 곁에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며, “의료계 역시 한 발 양보해 환자들 곁으로 돌아와 달라”고 말했다.

한편, 본지는 반론권 확보 차원에서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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