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로슈 닉 호리지(Nic Horridge) 대표이사 인터뷰
“혁신신약에 대한 보상, 현재와 미래 환자를 위한 일”

한국법인 대표 자리에 앉은 글로벌 제약사의 수장들에겐 공통된 고민거리가 있다. 전 세계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급여 체계에 대해 해외 본사를 설득해야 하는 문제다. 기업의 이윤과 사회적 책임이 혼재하는 제약바이오산업의 특성상 정부와 기업이 공존하는 선택지는 넓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혁신신약의 급여 등재에 속도를 내는 곳이 한국로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바뀐 2년여 전 부터 변화가 뚜렷하다. 다국적제약출입기자모임은 한국로슈 닉 호리지(Nic Horridge) 대표이사를 만나 한국 급여시스템에 대한 평가와 그간의 성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한국로슈 닉 호리지(Nic Horridge) 대표이사
▲ 한국로슈 닉 호리지(Nic Horridge) 대표이사

 

≫ 한국로슈 대표이사 취임 2년 간 느낀 국내 급여 체계에 대해 평가해달라.

한국 급여 환경에 대해 처음 느꼈던 인상은 ‘쉽지 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정부가 의약품 구매비에 대해 최대한 많은 가치를 뽑아내려고 하는 것은 어느 국가나 공통적이다. 한국만 특별히 어려운 환경은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 급여 시스템은 전체적인 심사, 결정 과정이 철저하다. 제약사 입장에서 급여 등재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입증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시장이다. 등재하고자 하는 의약품에 대해 의료진과 환자의 니즈를 반영하고 가치 입증을 위해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정부의 파트너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체계다.

다만,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급여 허가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편이다. 이 과정을 조금 더 빠르게 단축시키거나 환자와 의사가 누릴 수 있는 혜택, 기업이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얻게 될 보상 간의 적절한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다.

≫ 로슈의 급여 등재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 취임 후 변화를 설명해달라.

의약품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 보험급여 여부는 상당히 중요하다. 로슈는 허가와 급여를 담당하는 각 팀들이 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약이 허가에서 그치지 않고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의약품의 가치 기준까지 충족함으로써 급여 등재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지난 2년간 진행한 일 중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한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신약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어느 약이나 특허 만료는 불가피하다. 로슈그룹이 매년 전체 매출의 20%에 달하는 120억 달러를 혁신에 투자하고 있는 이유다.

특히, 앞으로 바이오시밀러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가격인하 요구는 자연스런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리지널 의약품, 예를 들어 ‘아바스틴’을 필요로 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회사는 적정선에서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맙테라, 허셉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Doing now what patients need next’는 로슈 그룹의 존재 이유이자 미션이다. 환자들은 끊임없이 보다 나은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어제 한 일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않고 오늘 다시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한다는 것이 우리 회사의 지향점인 이유다.

≫ 로슈만이 가진 차별화 된 ‘환자중심주의’는 무엇인지 말해달라.

로슈는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나 가치사슬(value chain)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 단계에 환자의 목소리가 적절히 반영돼 있는지 고민한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은 경험에서 비추어 볼 때, 회사 내에 환자중심주의가 잘 녹아 있다. 개인적으로 주로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업무를 맡다 보니 로슈가 환자중심주의 기반 회사라는 것을 항상 상기하며 일해왔다.

제품 디자인 과정에서조차 ‘어떻게 하면 환자가 조금 더 편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이뤄지는 것을 볼 때 임직원들의 DNA에는 환자중심주의가 확실하게 각인돼 있다.

한국로슈도 환자중심주의를 실천하고자 노력 중이다. 환자를 위한 최상의 옵션을 내놓으면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고 보상해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환자들까지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 로슈는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제약사로 유명하다. 의약품 허가와 등재에서 활용사례를 말해달라.

RWD(실제임상데이터)는 앞으로 맞춤의료 실현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항암분야에서는 최근 여러 치료제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조합 요법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도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가상 대조군을 데이터화해서 알레센자의 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 추후 한국에서도 RWD를 폭넓게 사용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이런 접근법이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 본다.

데이터를 급여 과정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 심평원 측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정 치료제를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용했을 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RWD 만큼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임상 연구는 항상 통제된 환경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 처방 환경을 전부 반영한다고 보기 어렵다. 때문에 향후, 실제 처방 환경에서 신약의 가치를 더욱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RWD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활용 방법에 있어 유연성을 적용해야 한다.

≫ 항암제 분야에서의 독보적인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궁금하다.

좋은 치료제를 보유하는 것만으로 리더십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리더는 목표와 방향성을 얼마나 잘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로슈는 '암의 완치'를 목표로 설정한 상태다. 암은 상당히 복잡한 질환이지만 접근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접근법을 선택해야 한다. 회사가 최근 맞춤의료 영역에 집중하고 있는 배경이다.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unmet need)를 채워나가면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우리가 가진 연구개발 능력과 제약회사로서의 능력에 강한 자신감이 있다. 후발주자의 추격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 한국로슈가 장·단기적으로 집중해야 할 영역에 대해 말해달라.

단기적으로는,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을 빠르게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이에 회사는 제품 중심이 아닌 각 적응증을 중심으로 팀을 10개로 나눴다. 각 팀은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자체적으로 도출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권한과 역량을 가진다. 업무 전에 반드시 리더십팀이나 대표이사에게 승인받을 필요 없이 진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더 많은 환자에게 빠른 해결책(better outcomes for more patients, faster)을 제공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로슈가 추진해야 할 3대 프로젝트도 있다. 우선 회사가 강세를 보이는 항암제 분야의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폐암과 간암에서는 티쎈트릭의 급여 확대를 계속 추진하고 조기 유방암에서도 캐싸일라가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최근에는 NTRK(신경성 티로신수용체키나제) 표적항암제인 로즐리트렉을 허가받았다. 암종에 상관없이 바이오마커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로,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항암제 분야에서 정부를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자와 협력해 궁극적으로 맞춤의료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쉽게 말하면, 환자들마다 자신의 암을 정확하게 진단을 받고 해당 유형에 적합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특정 약제를 사용하거나 최상의 치료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미충족 수요가 남아있는 질환에서도 지속적인 다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혈액암 분야의 항체약물결합체(ADC: Antibody-Drug Conjugate) 출시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며 적절한 치료 옵션이 없던 삼중음성유방암(TNBC: Triple-Negative Breast Cancer)에서 처음으로 면역항암제가 승인받았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크다. 신경과학 분야에서도 가급적 올해 안에 2개의 희귀질환 치료제를 출시하고, 내년쯤 하나를 더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안질환 분야에서도 향후 새로운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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