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산업 초점 맞춘 접근법 '글쎄'…“환자 관점서 바라봐야”
“국내 여건 고려한 전화 진료·모니터링 등 원격의료가 합리적”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정부가 비대면 진료 도입을 공식화 했다.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와 전화 진료 등으로 비대면 진료의 효용성을 입증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우수한 기술을 보유했으나 규제에 막혀 해외에서만 활동해야 했던 산업계에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환자’가 아닌 '비대면 산업’ 활성화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며 거부감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19일, 감염병 대응 등을 위해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비대면 의료 제도화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환자안전 등 우려사항 등에 대한 보완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2025년까지 비대면 의료 지원을 위해 입원환자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 의료기관 협진이 가능한 ICT 활용의 스마트병원 18곳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2024년까지는 간 질환·폐암·당뇨 등 12개 질환별로 AI 정밀 진단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닥터앤서 2.0 사업)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 처방 등 비대면 진료를 확대 시행하겠다는 것.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이미 예견됐다. 실제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전화상담, 처방건수는 10월 25일 기준 100만 건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통해 비대면 진료의 효용성도 입증됐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원격의료와 관련해 그동안 우수한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제도와 법적인 문제로 인해 상용화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료계가 거세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계명의대 심장내과 김윤년 교수팀은 2005년 경에 ‘원격 심전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지만 상용화되지는 못 했다. 의료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결국 원격의료 관련 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은 국내 시장은 포기한 채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해야 했다.

삼성전자는 2017년 4월부터 미국·영국·인도 등에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탑재된 ‘삼성 헬스’ 앱을 이용해 의사와 화상으로 면담하고 엑스레이나 피검사 결과 등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의료법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재활의료기기 업체인 네오펙트의 미국 의료법인 ‘커뮤니티 리햅 케어’는 매사추세츠 주정부로부터 코로나19에 관련된 원격의료비 보험 적용을 승인 받아 활동 중이다.

원격의료 플랫폼인 메디히어는 올해 1월 미국에서 앱을 출시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미국 내 한인을 한국어와 영어로 연결해주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격진료와 처방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놓고 의료계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의료’와 ‘환자’ 관점이 아닌 ‘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부감을 표하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호주 등 다른 나라와 달리 의료 접근성이 좋아 비대면 의료가 확대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국내 여건을 고려했을 때 전화 진료, 모니터링 등의 원격의료가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전화 진료를 허용했을 때 의사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건상 환자에게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라며 “하지만, 정부는 이를 빌미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운운하며 제도화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격의료의 안전성, 의료사고 위험성 등을 면밀히 따지지도 않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강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무조건 반대만 외칠 것이 아니라 환자안전을 위해 정책이 안전하게 실행될 수 있도록 의사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비대면 진료는 형식과 질이 다양한 만큼 허용 범위나 의료사고 발생 시에 책임 소재, 안전한 진료를 위한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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