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 자금·시간 ‘압박’…“뚝심 경영 쉽지 않을 것”
대표 자리 꿰찬 제약家 오너 3세…‘신약 시계’ 앞당긴다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나라에서 ‘오너 경영’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일종의 ‘독식’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산업 역시 여전히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이 상당수다. 과거부터 ‘보수적인’ 업종으로 평가받던 분야인 만큼 그들의 영향력도 타 산업 못지 않다.

그렇다면 ‘오너 경영’을 꼭 곱지않은 시선으로만 봐라봐야 할까. 최소 제약산업에 있어서 만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제약업의 핵심축인 신약 개발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자되는 만큼, 사실상 오너 만이 이를 장기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경영에 뛰어든 오너 3세들의 공격적인 도전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배경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10대 제약·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 ▲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씨젠 ▲광동제약 ▲대웅제약 ▲삼성바이오로직스 ▲한미약품 ▲차바이오텍 가운데, 유한양행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차바이오텍을 제외한 나머지 7곳은 직·간접적으로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수년 동안 오너 3세의 경영 참여도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초 보령제약은 보령홀딩스 신임 대표이사에 김정균 운영총괄(사내이사)을 선임했다. 김 대표는 보령제약 창업주인 김승호 회장의 손자다.

유유제약도 창업주인 故 유특한 회장의 손자인 유원상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일동제약도 창업주인 故 윤용구 회장의 손자이자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의 장남인 윤웅섭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윤웅섭 대표는 2014년부터 일동제약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 중이며, 지난 2016년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통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올해 마스크 사업으로 대박을 터트린 국제약품의 남태훈 대표도 오너 3세다. 창업주인 故 남상옥 회장의 손자로 2017년 업계 최연소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제약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녹십자도 오너 3세 경영이 한창이다. 이 회사는 최근 창업주인 故 허채경 명예회장의 손자인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가 허용준 신임 사장의 형인 만큼 녹십자는 이들 형제가 이끌게 됐다.

삼천당제약은 조금 특별하게 3세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현 사장인 전인석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전인석 대표이사는 창업주인 故 윤덕선 명예회장의 차남 윤대인 회장의 맏사위이다.

2014년 삼천당제약 전략실장으로 입사해 2018년 사장으로 취임한 전 대표는 바이오시밀러 등의 신사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이루며 회사의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처럼 제약업계는 최근 수년 동안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도 있지만 여전히 가족 경영이 두드러진 모습이다. 신약 개발을 위해 오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는 만큼 변화 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가족 경영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감이다”며 “전문 경영인 보다 오너가 대표로 있을 때 장기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신약 개발과 차세대 먹거리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오너 경영은 제약사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오너 3세의 경영 참여는 1, 2세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 젊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소통을 중시하고 사업을 전개한다는 장점도 있다.

앞서의 관계자는 “3040 세대의 오너 3세들은 기존 세대와 달리 일찍부터 외국 유학을 하며 해외시장 진출과 신약 개발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여기에 젊은 세대 특유의 장점까지 결합하면서 보다 공격적인 도전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오너 3세가 경영에 뛰어든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볼 수 없던 과감한 사업 전개에 따른 성과도 가시화 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캐시카우를 확보함으로써 신약개발의 선순환 구조도 기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일동제약 윤웅섭 대표는 단독 대표 체제 4년 동안 과감한 결단으로 ‘수익’과 ‘R&D’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윤 대표는 ‘선택’과 ‘집중’을 중심으로 ▲암 ▲비알코올성간질환(NASH) ▲중추신경계(CNS) ▲안질환 ▲메타볼릭증후군 5개 분야를 주력사업으로 선정하고, 연구인력과 예산을 크게 늘렸다. 회사는 매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사용하고 있다.

또 습윤 드레싱제 ‘메디터치’, 4중 코팅 프로바이오틱스 ‘지큐랩’, 종합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마이니’, 화장품 ‘퍼스트랩’, 비타민제 ‘엑세라민’ 등을 신규 런칭하면서 수익 창구의 다변화도 꾀했다.

이 같은 행보는 올 하반기 첫 성적표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 3분기 일동제약의 매출은 1,466억원으로, 전년 동기 1,296억원 대비 13.1% 증가했다. 분기 매출로는 2016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가장 높은 기록이다.

국제약품 남태훈 대표는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경우다.

남 대표는 취임 후 마스크사업과 신재생에너지사업을 추가한 데 이어, 점안제 생산 라인을 확대하면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수익을 극대화했다.

특히, 업계 내에서도 부정적이었던 마스크사업 진출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기업의 ‘효자 사업’으로 떠올랐다.

삼천당제약은 전인석 대표 취임 후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약품, 혁신형 의료기기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 다각화를 이루며 대형제약사로 발돋움 하고 있다.

특히, 황반변성치료제 아일리아(성분명: 애플리버셉트) 바이오시밀러 ‘SCD411’이 글로벌 임상 3상에 돌입했고, 일본, 유럽·중남미 지역에 대한 판매망까지 확보하면서 개발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 2014년 발굴한 벤처기업 디오스파마에 투자해 무채혈 혈당측정기의 국내 독점판매권과 해외 매출에 대한 이익 공유 권리를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캐시카우를 확보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오너가 하면 뭔가 다르다. 오히려 전문경영인 보다 성과를 낼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며 “제약산업의 특성상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만큼 가족 경영은 신약개발의 낮은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메디코파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