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코로나19에 밀려 ‘찬밥 신세’…‘신뢰성 훼손’이 원인
COVID-19 백신·치료제 개발 피로감…다시 부는 혁신신약 바람
mRNA 백신 계기로 RNA 치료제 관심 ‘증폭’…新 대세 ‘입증’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미래 생존 열쇠로 꼽히던 신약개발이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예년보다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동안 시장의 주목을 받았던 주요 신약들이 잇따라 임상에 실패하며 실망을 안긴 것이 이 같은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여러 기업들이 의미있는 기술수출 성과를 냈지만 시장의 주목도는 예년만 못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신약개발에 대한 냉혹한 시선이 어느정도 누그러질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어 그동안 저평가됐던 신약개발 기업들이 다시 재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국내 기업의 기술수출 성과를 되짚어 보고 글로벌 신약개발 트렌드를 조망해 봐야 하는 까닭이다.

≫ 신약 플랫폼 기술, 라이선스 아웃 트렌드 ‘견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해외 기술수출 계약 규모(12.3 기준)는 약 10조1,488억원이다. 지난 2015년 4,846억원, 2016년 2조5,277억원, 2017년 1조3,394억원, 2018년 4조6,160억원, 2019년 7조4,97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이처럼 올해 빛나는 성과가 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이오벤처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알테오젠은 ALT-B4 원천기술을 4조6,770억원에 기술수출하며 계약 규모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레고켐바이오는 올해 가장 많은 총 4건의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며 1조4,936억원의 계약을 수주,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올해 기술수출은 플랫폼 기술 보유기업들이 주도했다. 전체 기술수출 계약 중 자체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비중이 60%를 훌쩍 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개발 초기 단계에서 빠르게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유효성과 안전성을 점검, 계약을 체결하는 이들의 사업 구조가 빛을 발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보유 기업의 기술수출 성과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발 과정에서 MTA(물질이전계약)나 EA(Evaluation Agreement) 계약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고, 플랫폼 기술을 토대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발굴·확보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얀센으로부터 반환받은 LAPS Dual Agonist를 기존 적응증이 아닌 신규 적응증으로 변경해 MSD로 신규 이전한 사례가 플랫폼 기업의 확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 ‘지갑 닫은’ 투자자들, ‘달라진’ 기술수출 민감도

하지만 기술수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반응은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과거에는 관련 공시나 계약 소식이 전해지면 주가가 즉각적으로 반응했지만 올해는 그 민감도가 확실히 떨어졌다. 잇따라 전해진 임상 실패 소식과 그동안 누적돼 왔던 기술수출 반환사례가 투자자들의 지갑을 닫았다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신약개발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가장 많은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레코켐바이오의 주가는 연초(2020.1.2.~12.18) 대비 25.2%(5만2,300원→6만5,7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계약 규모가 가장 컸던 알테오젠은 144.4%(6만9,800원→17만600원)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하며 체면을 유지했다. 그러나 올해 많게는 수십배씩 주가가 뛰었던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기업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계약 소식이 전해진 당일의 이들 기업의 주가를 보면 이 같은 분위기는 더욱 분명해 진다. 레고켐바이오의 경우 올해 첫 기술수출 계약을 발표한 4월 14일 주가 상승률이 4.3%에 불과했다. 5월에는 공시 이후 오히려 전거래일 대비 주가가 10%나 빠졌다. 알테오젠은 결과가 더 좋지 않았다. 6월 24일 공시 발표 이후 13.9%가 빠졌고, 다음날도 하락(0.4%↓)을 면치 못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주가 흐름세를 보여줬다. 유한양행은 공시 당일 0.3% 상승, 올릭스는 7.6% 하락, SK바이오팜 3.7% 상승을 기록했다. 그나마 한미약품이 공시 이후 이틀간 30%가 넘는 주가 상승률을 보여주며 선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기술수출에 대한 투자자들의 냉혹한 시선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코로나19 광풍이 불면서 관련 기업에 투심이 몰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기술수출 기업들이 계약 이후 구체적인 성과물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평가가 갈수록 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공시만 나오면 상한가로 직행하던 호시절은 지나갔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근 투자자들은 각 단계별 성공 여부에 대한 확률을 면밀히 분석해 현재 가치를 산정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 계약 규모가 아니라 반환이 필요없는 계약금의 비중과 개발 이후 받게 될 마일스톤 등의 수취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코로나19 테마주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내년이 무엇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2021년 새로운 성과물을 내보일 준비를 한창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에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 유한양행·한미약품 등 韓 정통제약사, 글로벌 도약 ‘초읽기’

내년에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여러 신약 파이프라인의 이벤트가 예고돼 있다. 우선 연초에는 유한양행과 오스코텍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이 국내 조건부허가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약품이 자체 신약개발 플랫폼인 랩스커버리와 오라스커버리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와 경구용 항암제 오락솔의 미국 시판허가 여부도 시장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녹십자의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와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F가 중국 시장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헌터라제는 중국당국의 시판허가를 받은 상태로 곧 초도물량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그린진F는 시판허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셀트리온의 고농도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CT-P17도 유럽 시장 진출 9부 능선을 넘은 상태다. 내년 상반기 내로 최종 시판허가가 유력한 상황이다. 오스코텍의 SYK 저해제는 내년 JP모건 컨퍼런스에서 임상 2상 중간발표가 기대된다. 만약 긍정적인 데이터가 확인될 경우 기술수출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을 계기로 RNA 기반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가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글로벌 제약사들이 RNA 치료제 개발에 뛰어 들었으나 세포투과성이나 약물전달, 독성과 면역반응 등의 문제로 상업화에 번번히 실패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면서 다양한 적응증의 신약들이 하나둘씩 시장에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시장 잠재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Global Data에 따르면 올해 5조1,313억원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RNA 치료제 시장은 2021년 7조1,505억원, 2022년 9조4,205억원, 2023년 11조9,777억원, 2024년 14조5,121억원으로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Ionis의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의 매출 추이를 살펴보면 이 같은 예상치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출시 첫 해인 2017년 매출이 8.8억달러 였는데 2019년 21억달러로 2배 넘게 증가했다.

현재 총 7개의 RNA 치료제가 시판허가를 받은 상태고, FDA에 NDA를 신청한 약물은 4개다. 아직 시판 약물이 많이 않지만 FDA 시판허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노바티스의 인클리시란의 판매가 본격화 되면 전체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팽창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동안 시판된 약물이나 개발 중인 약물 대부분이 희귀 유전질환인 반면 인클리시란은 만성질환인 고지혈증을 적응증으로 하고 있어서다. 또 인클리시란을 계기로 RNA 치료제 연구·개발도 활기를 띠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올해 신약개발과 기술수출이 주력 사업 모델인 기업들이 투자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이 같은 흐름이 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돼 있는 데다 국내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에서 시판허가가 예상되는 약물 후보군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며 “만약 이들이 시장의 기대대로 좋은 성과를 낸다면 바이오벤처가 반등하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 mRNA 백신을 계기로 RNA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RNA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의 가치 재평가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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