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최빈국에 의약품 ‘특허 면제’…국내서 버젓이 ‘악용’
항암제 등 방글라데시産 특허만료 전 의약품 ‘싼 값’ 유혹
미허가 복제약, 판매자·브로커·사용자 ‘유통 삼각구도’ 충격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고가의 복제 전문의약품이 국내에서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 반드시 처방이 필요한 약이지만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환자와 가족들이 구매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매자는 이 약이 믿을 만한 제약사에서 만들어졌다며 구매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되지 않은 불법 의약품인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일 <메디코파마뉴스> 취재 결과, 특허가 풀리지 않은 고가의 전문의약품 제네릭이 온라인상에서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웹페이지에는 C형 간염 치료제인 ‘엡클루사(길리어드 사이언스)’와 ‘마비렛(애브비)’, 표적항암제 ‘타그리소(아스트라제네카)’를 비롯한 ‘알레센자(로슈)’ 및 ‘비트락비(바이엘)’, 폐섬유증 치료제 ‘오페브(베링거인겔하임)’ 등 하루에 수 십만 원을 호가하는 처방의약품이 불법 판매 사이트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판매자는 이 약들이 유럽(EMA)과 세계보건기구(WHO)의 GMP(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 인증을 받은 방글라데시 제약사에서 제조·생산됐고, 기업과 직접적인 거래를 통해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게다가 웹상에서 파는 제품들은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도 효능과 안전성이 더 좋거나 동등하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판매 목록에 없는 고가약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면서 ‘약 팔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데도 ‘100% 배송 보장’, ‘관세 프리’, ‘별도 서류 일체없음’ 등의 문구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판매자는 방글라데시산 의약품이라는 점을 왜 유독 강조했을까. 본지 취재 결과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의약품 접근성 강화와 보건의료 향상을 위해 최빈국(방글라데시 포함)에 한해 의약품 특허 및 임상 데이터 보호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다.

당초 이 혜택은 2016년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2015년 11월 WHO 회의에서 2033년 1월까지 연장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특허가 만료되지 않았어도 방글라데시 등 일부 최빈국에서 복제 의약품(제네릭)이 버젓이 만들어지고 있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매 순간이 절박한 환자와 가족들은 방글라데시산 제네릭의 유혹에 끌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이 약들을 비급여로 처방받을 경우 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데다 보험급여 조건을 충족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인지 해당 질환과 관련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복제약 사용 후기와 구매 경로를 문의하는 게시글이 적지 않았다. 특히 제네릭을 사용하거나 경험이 있는 일부 환자와 가족들은 구매처나 브로커 관련 정보를 쪽지를 통해 활발히 공유하기도 했다.

복제약에 관심을 보인 환자와 가족들은 믿을 만한 현지 제약사가 생산했다는 것만 확실히 담보된다면 구매해 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애초에 방글라데시산 제네릭은 자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안전성과 효과성에 큰 문제가 있겠냐는 기대인 것.

본지 취재에 응한 환자 가족은 “불법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나. 하지만 까다로운 급여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약 구경도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불법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환자와 가족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정부와 언론이 살펴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특허가 만료되지도 않은 일부 고가의 복제약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지만 사실상 원개발사는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방글라데시에서 불법으로 해외에 팔리고 있는 의약품의 특허를 보유한 제약사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회사 쪽으로 직접 접수된 내용은 없었다”며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은 의약품의 제조·판매는 약사법상 불법인 게 맞다.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허가 의약품은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한편 본지는 환자 수요가 높은 오리지널을 보유한 모 다국적 제약사에 방글라데시산 제네릭 국내외 유통 모니터링 여부와 최빈국에 부여되는 의약품 특허 면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물었으나 명확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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