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백신, NIP 도입 요구만 수년째…우선순위 ‘이견’
미국 시장 98% 장악 GSK 싱그릭스, 국내 허가도 ‘초읽기’
조스타박스·스카이조스터 퇴출수순 밟나…‘NIP 진입이 관건’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대통령의 지시로 대상포진 백신이 국가예방접종사업(NIP) 진입의 활로를 열 수 있을까. 예산, 시기, 연구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가운데 정부가 어떤 방안을 마련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폐렴(구균) 백신 접종처럼 대상포진 등의 질환도 백신 접종을 국비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에서‘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 성과와 보완 과제’를 보고받은 뒤 어린이병원 수가 인상·치매안심센터 활성화·신의료기술 급여화 등과 함께 나온 지시였다.

문 대통령이 대상포진 백신과 비교한 폐렴구균 백신은 지난 2014년 국가예방접종사업에 진입해 현재 전액 국비로 접종되고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지시가 대상포진 백신의 NIP 진입 방안 모색으로 갈음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상포진은 신경절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면역력 저하로 인해 재활성화돼 발생하는 질환이다. 주로 고령층에서 발생하며 발병 환자의 4% 가량은 입원치료까지 이어진다.

환자 수는 고령화로 인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에 따르면 2010년 연간 48만 명이던 환자 수는 2019년 74만 명까지 늘어난 뒤 2020년 72만 명으로 소폭 감소했다.

환자 증가로 인해 건보재정에서 발생하는 치료비(건보재정+환자부담)도 2010년 756억 원에서 2020년 1664억 원까지 늘었다.

대상포진 백신이 NIP에 진입해 고령층에 접종할 수 있다면 발병 환자 수와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예산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사람 간 전파가 극히 드문 대상포진이 타 질환 백신보다 NIP 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느냐다.

≫ 대상포진 백신, NIP 도입 목소리 수년째…‘시기상조’ 의견도

대상포진 백신의 NIP 진입 이슈가 처음 나온 것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스카이조스터’를 출시한 직후인 2018년경이다.

당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대상포진 백신을 NIP에 도입하기 위해 타당성을 분석하겠다고 했다. 공청회와 연구용역 등을 통해 장기적 계획으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결산심사 소위원회에서 발생했다. 대상포진 백신의 NIP 진입 예산 책정 여부를 놓고 여야가 맞붙은 것.

야당은 대상포진 백신이 고가이기 때문에 접종하지 못하고 환자들이 고통을 참고 있다는 주장을 폈고 여당은 보건당국이 예방효과를 확인하지 못한(스카이조스터의 예방률은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음) 상황에서 고가 백신의 NIP 도입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2018년 보건복지위 예산에 대상포진 백신은 포함되지 않았다.

2019년에도 국회에서 대상포진 백신의 국가예방접종사업 도입 목소리가 나왔다. 질병관리본부는 진행 중인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뒤에야 고려할 수 있다고 답했다.

2019년 12월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비용-효과비(ICER) 값은 22,823,984원/질보정수명(QALY)으로 비용-효과적으로 나왔다”면서도 “다만 접종비용(백신가격+접종행위료)이 11만1,936원 이상일 경우에는 비용-효과성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보고서 링크 : http://www.kdca.go.kr/board/board.es?mid=a20602010000&bid=0034&act=view&list_no=365563)

2020년에는 유상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상포진 백신을 NIP에 포함하는 감염병예방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관련 기관 의견서에서 ‘신중’ 의견을 냈다. 정부예산 추계와 전문가 단체와의 논의 등 다각도 검증이 이뤄진 후에야 NIP 진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또 대상포진의 경우 대부분의 NIP 백신과 달리 집단유행 발생 차단보다 개인의 질병 예방이 목적인 점과 적기에 항바이러스제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 6개월만에 美 시장 독점 싱그릭스, 국내 허가 임박…기존 백신 ‘퇴출수순’ 밟나

GSK의 싱그릭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품목허가 신청을 해놓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싱그릭스가 품목허가를 획득하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생산 이슈까지 해결해 시장에 나온다면 대상포진 백신 문제는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싱그릭스가 시장에 진입할 경우 기존 2종의 백신이 시장 퇴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17년 출시된 싱그릭스는 현재 대상포진 백신 시장의 98%를 장악하고 있다. 이 백신이 시장 점유율 90%를 달성하는 데 걸린 기간은 단 6개월에 불과했다.

2006년 전 세계 첫 대상포진 백신으로 개발돼 시장을 독점하던 MSD의 ‘조스타박스’ 처방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2020년 MSD 본사의 연례보고서부터는 한때 1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한 조스타박스에 대한 내용이 사라졌다.

이 같은 시장 상황은 싱그릭스의 예방률이 조스타박스를 압도하고 있는 것이 배경이다. 사백신인 싱그릭스는 배양된 병원체를 열 또는 화학물질로 비활성화한 유전자 재조합 방식이다.

50세 이상이 참여한 ZOE-50 임상에서 싱그릭스의 예방률은 97.2%에 달했다. 70세 이상이 참여한 ZOE-70 임상에서도 예방률은 89.8%였다.

약독화 생백신인 조스타박스는 50대를 대상으로 한 ZEST 임상에서 70%의 예방률을 보였지만, 60대 이상이 참여한 SPS 임상에서는 60대가 64%, 70대 41%, 80대 이상에서는 18%로 나타났다.

국내에만 출시돼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생백신)는 조스타박스와 비교해 면역원성이 열등하지 않다는 결과만으로 허가됐다. 회사는 여전히 예방률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봤을 때 싱그릭스의 시장 진입은 기존 생백신의 시장 퇴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싱그릭스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양하게 나와 있다. 가격 차가 크지 않다면 싱그릭스를 권해야 한다”며 “싱그릭스 출시 후에 생백신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NIP 진입 뿐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시 말해 싱그릭스가 출시된 이후에는 정부가 조스타박스와 스카이조스터의 NIP 가격을 크게 낮추더라도 두 제품 모두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다만 싱그릭스는 여전히 세계적인 품귀 상황으로 생산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과 중국 시장 접종도 시작된 만큼 국내에 들어오기까지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저작권자 © 메디코파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