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방위 전략 ‘새판짜기’ 시급…“감염병 상비군 투자해야”
2000년대 AI·사스·신종플루·에볼라·메르스·지카·코로나19 발생
“감염병정책연구원·국립감염병센터 등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해야”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감염병 대응 상비군’을 만들어 사전 예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00년대 들어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미 두 번이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만큼 지금과 같은 사후 대응이 아닌 전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신종 감염병이 터질 때마다 최전선에서 방역에 관여했던 국내 대표 감역학 권위자의 입에서 나온 말인 만큼 관심이 쏠린다.

중국에서 시작한 코로나19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WHO는 신종 감염병이 등장한지 3개월 만에 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델타 변이를 앞세운 코로나19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8월 21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2억 996만 명, 사망자는 440만 명에 이른다. 신종 감염병이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이 2000년대 들어 여섯 번째라는 점이다.

2000년 조류독감(AI)을 시작으로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2015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2016년 지카 바이러스, 2020년 코로나19까지 신종 감염병 발생 빈도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신종 바이러스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며 이는 전 세계를 위협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초 발표한 ‘2021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통해 전염병이 향후 10년 이내 전 세계에 발생할 ‘글로벌 위험요인’이라는 점을 경고했다. WEF가 선정한 위험요소 35개 가운데 전염병의 영향 정도를 5점 만점에 4.13점으로 가장 높았다고 평가한 것.

여기에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빙하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미지의 미생물들이 깨어날 우려도 제기됐다.

수 십 만 년전 유행했던 바이러스들은 당시 인류에게는 면역이 생겨 일반적인 바이러스일 수 있지만, 현 인류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시베리아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며 고대 동물들의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75년 전 탄저병으로 죽은 순록이 노출되면서 탄저균 포자가 방출돼 약 2,300마리의 순록이 떼죽음을 당하고 소년 1명이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1월에는 미국과 중국의 공동 연구팀이 티베트 굴리야 빙하의 영구동토층을 굴착해 1만 5,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바이러스 샘플을 확보했다.

샘플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4종의 바이러스와 처음 보는 28종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들어 있었다.

전문가들이 ‘감염병 대응 상비군’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신종 감염병이 발생한 후에야 대응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처해왔다.

최근 코로나19 대응만 보더라도 이 같은 기조는 여실히 드러난다. 델타 변이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말 델타 변이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 전문가들은 사전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는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입장만 반복했고, 결국 원어민 강사발 감염이 확산되면서 델타 변이는 국내 우세종으로 자리잡게 됐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23일 <메디코파마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전쟁을 대비해 50만명을 항상 상비군으로 편성하고 있다. 비행기와 대포, 전차, 배 등을 매년 수십조씩 투자해 증강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며 “바이러스 전쟁도 상비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감염내과·중환자의학과·호흡기내과 의사와 감염전문간호사 등의 인력을 확보하고, 백신과 치료제를 충분히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항바이러스제를 상시 비축하는 한편, 이를 지휘 감독할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우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안보연구원, 경제연구원은 있지만 감염병정책연구원은 없다. 그렇다보니 지난 신종 감염병 사태 대응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면서 “감염병정책연구원을 설립해 해외 전염병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국내 유입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을 진단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정부는 국립중앙의료원 등 기존의 의료원을 활용해 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하겠다고 했지만 수년째 지지부진 논의만 이뤄지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며 “국립암센터와 같이 별도의 국립감염병센터를 만들어야 한다. 감염병정책연구원과 함께 신종 감염병을 사전에 진단하고 대응하는 한편, 발생 시 전진기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9년 신종플루 직후 음압병상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2015년 메르스가 발생할 때까지 목표했던 양을 채우지 못했다. 메르스 이후에는 권역별 감염전문병원을 설립하겠다고 했으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질 때까지 마련하지 못했다”며 “코로나19 종식 후에는 사후약방문이 아닌 전반적인 신종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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