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역학관 양성·진단시스템 마련·근거 구축은 공”
중대본·중수본, 감염병 대응 주도…질병청 역할 ‘의문’
“방역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 미흡…전문성 부족 아쉬워”

▲ 사진=질병관리청 전경(출처: 질병관리청 홈페이지)
▲ 사진=질병관리청 전경(출처: 질병관리청 홈페이지)

질병청 출범 1년. 그러나 여전히 방역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역학조사관을 양성하는 데에는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9월 12일,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이 공식 출범했다. 당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초대 청장으로 임명하고, 청·차장을 포함한 5국 3관 41과 1,476(본청 438명, 소속기관 1038명)명 규모의 조직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기존 질병관리본부 인력 907명과 비교해 569명이 늘어난 수치다. 이 중 재배치를 제외한 순수 증원 인력은 384명이다.

질병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승격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감염병 관련 기능이 대폭 확충됐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던 종합상황실은 상설 조직이 돼 국내외 감염병 동향을 24시간 감시하기로 했으며, 국립보건연구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 질병대응센터, 국립결핵병원, 국립검역소 등의 소속기관도 갖추게 됐다. 특히, 5개 질병대응센터가 설치돼 자치단체 감염병 대응인력도 대폭 보강될 수 있도록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질병청은 코로나19 방역 대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신종 감염병 대응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현재까지 방역을 끌고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줬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정기석 교수는 <메디코파마뉴스>와의 통화에서 “질병청 승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문성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역학조사관을 늘리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교육, 현장에 투입하면서 방역을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진부터 변이 여부 등의 각 진단검사 과정까지 기틀을 마련해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신종 감염병 발생 초기, 민간에서 운영하던 각종 통계를 질병청에 일원화시켜 발표함으로써 국민 혼란을 잠재웠다”고 평가했다.

≫ 중대본·중수본에 ‘끌려다니는’ 질병청…컨트롤타워 역할 ‘의문’

신종 감염병 방역 대응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은 미흡했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 방역과 관련한 정부 조직은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와 보건복지부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질병청의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3곳이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방대본이 코로나19 대응의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중대본과 중수본의 목소리에 밀려 제대로 역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 구매 지연’과 ‘백신예약시스템 오류’ 등으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면서 질병청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최근 본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신종 감염병 대응에서 방대본이 의사 결정의 핵심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중대본과 중수본에 끌려다니는 모습”이라며 “질병청은 백신 접종부터 위험성 평가, 분석 등을 하는 한편, 백신 접종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모델링도 제시해야 하지만 현실은 중수본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담당하면서 제대로된 방역 체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기석 교수도 “백신 구입 당시 질병청이 백신 필요성의 절실함을 정부에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면서 도입을 늦추는 상황을 만들었다”며 “이 점은 굉장히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역 단계를 조정하는 문제도 중대본 결정에 따라다니는 모습”이라며 “방역도 과학인데 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방역이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질병청, 코로나19에 역량 집중…여타 감염병·질병 ‘사각지대’ 내몰려

질병청이 국가적 재난에 맞서느라 코로나19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다른 감염병과 질병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로 신종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되자 보건소와 공공병원의 모든 의료서비스가 중단되면서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HIV/AIDS·에이즈), 결핵과 같은 감염병 대응은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9월 HIV 감염인 A씨는 경기 남부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 엄지손가락이 절단됐지만, 20여 개의 병원에서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수술을 모두 거부했다. 결국 A씨는 사고 후 13시간이 지난 뒤에야 서울 노원구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현재까지 손가락을 굽힐 수 없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HIV 간이검사소를 늘리는 한편, 보건소의 다른 보건의료 서비스 업무를 병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질병청은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

앞서의 정기석 교수는 “현재 질병청이 코로나19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다른 질병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며 “다른 감염병 뿐만 아니라 만성질환 등 여타 질병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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