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제약바이오 2021년 상반기 재고자산 현황(下)
불어난 재고, 경영부담 ‘가중’…영업익 평균 10% 깎아먹어
동화·셀트리온제약·팜젠·한미 보수적 대응…‘선제적 재고떨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곳간을 제때 비우지 못한 제약사들의 손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제약기업 51곳의 피해 규모가 상반기에만 400억 원대를 훌쩍 넘어서면서 올해 1,000억 원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본지 분석 결과 확인됐다. 창고에 쌓아둔 재고 물량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기업의 재고자산 가치를 깎아 먹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렇게 곤두박질 친 재고자산의 가치는 영업이익에까지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내 상장 제약사를 감사하는 외부 회계법인이 ‘재고자산의 평가’를 핵심감사항목으로 꼽고 있는 만큼 기업별 재고 물량에 대한 전략적 관리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참고 기사 : 제약사 장부 들여다 본 외부감사, ‘이것’ 지적했다]

<메디코파마뉴스>는 우리나라 주요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51곳의 올 상반기 재고자산 손실 규모를 해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

분석 결과, 51개 제약사 가운데 46곳이 당초 취득한 원가보다 4.4%에 해당하는 약 2,418억 원 규모의 재고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만 보면 평가 및 폐기 손실로 인한 손해 규모는 413억 원에 달했다.

≫ ‘몸값 떨어진’ 재고…현 시가 대비 평균 4.4% 가치 감소

당초의 재고 가치가 현 시가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곳은 동화약품이었다. 이 회사가 보유한 재고자산(431억원)은 처음 매겨졌던 재고 가치에서 약 16.2%(84억원) 빠졌다.

메디톡스도 재고자산의 취득가에서 15%(61억원) 가까이 손실이 났다. 다만, 이 회사는 앞서 재고자산의 평가 손실비용을 미리 장부에 잡아 놓았던 만큼 당기에 처리한 비용은 2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도 당초의 재고 물량 가치가 현재 시가와 5% 이상 차이가 벌어진 곳은 셀트리온제약(83억원, 14.9%), 팜젠사이언스(24억원, 13.7%), 한미약품(370억원, 11.2%), 동구바이오제약(21억원, 9.2%), 영진약품(40억원, 7.5%), 화일약품(21억원, 6.6%) 등이었다. 애초에 재고를 100억 원에 취득했다면 현재는 그 가치가 6억 원 이상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이렇게 올 상반기까지 손해 규모가 확인된 36개사의 평균 손실 누적비율은 4.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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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국내 주요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51곳 올 상반기 재고자산 현황(자료 출처: 각사 사업보고서, 메디코파마뉴스 재구성)
표=국내 주요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51곳 올 상반기 재고자산 현황(자료 출처: 각사 사업보고서, 메디코파마뉴스 재구성)

≫ 100억 벌어 10억 ‘손해’…재고 가치 하락이 영업이익 웃돈 곳도

올해 재고 가치가 떨어지면서 영업이익에서도 손실을 낸 곳들이 속출했다.

올 상반기 당기 손실이 가장 컸던 곳은 진단키트 수출로 이름을 알린 씨젠이었다. 이 회사가 손해 본 돈만 이 기간 71억 원에 달했다.

문제는 진단키트 제품을 주력 품목으로 둔 회사들에서 올 2분기 수출 감소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진단키트기업인 피씨엘의 경우 지난해보다 매출이 반토막(2분기 매출 98억원, 전년比 53%↓) 나면서 73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내고 적자로 돌아섰다. 수젠텍(매출 63억원, 74%↓)도 매출 하락에 따라 8억 원의 적자를 봤다. 인트론바이오(78억원, 77%↓) 역시 전년 2분기 116억 원의 이익을 얻었지만, 올해에는 2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처럼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면 재고는 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 기업 모두 창고에 쌓아둔 제품이 늘어난 만큼 진단키트 업체들의 향후 재고 추이가 영업이익을 가를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셀트리온(58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31억원), 일양약품(26억원), 영진약품(20억원), 보령제약(16억원), 광동제약(14억원), 팜젠사이언스(14억원), 대원제약(14억원), 동구바이오제약(12억원), 셀트리온제약(12억원), 한독(12억원) 등이 당기 손실이 크게 난 곳들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올 상반기 발생한 재고 손실분이 갉아먹은 영업이익만 평균 10.7%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마저도 재고 손실분이 이미 영업이익을 초과한 곳은 제외한 수치다.

이는 당기 영업이익으로 100억 원이 발생했다면 이 중 재고 손실로 인해 약 10억 원 상당의 이익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재고자산의 가치하락이 올해 제약사 실적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실제로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재고 손실분의 비중이 높았던 곳들이 다수 존재했다.

동구바이오제약(영업익比 손실비중 35.6%), 영진약품(29.5%), 팜젠사이언스(21.1%), 일양약품(17.8%), 명문제약(11.2%), 한미약품(10.9%) 등이 영업이익에서 10% 이상을 재고 손실로 깎아 먹은 곳들이었다.

녹십자는 재고의 현재 가치가 처음보다 9.4% 떨어졌다. 그 누적금액만 388억 원 규모다. 회사는 이를 모두 과도한 재고자산(체화재고)으로 보고 폐기 대상으로 분리했다. 이 중 올해 62억 원을 재고 손실로 처리했다.

녹십자의 영업이익은 올 상반기까지 161억 원이었다. 재고 손실이 영업이익의 38%를 기록한 셈이다. 이 회사는 앞서서도 지난해 재고 손실로 201억 원을 비용으로 처리하면서 불용 재고를 투명하게 정리한 바 있다. 일찌감치 거액의 손실을 반영해 놓은 만큼 올해 하반기 이후 영점조정을 마친 상태로 출발선에 서게 됐다.

동구바이오제약은 재고의 현재 가치가 처음보다 9.2% 떨어졌다. 누적금액만 21억 원 규모였다. 이 중 올 상반기에 절반이 넘는 12억 원 상당을 장부에 재고 손실로 처리했다.

같은 기간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35억 원이었다. 동구바이오제약이 지난해 상반기에 5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만큼 올 수익성 저하의 원인이 재고자산 불용처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한 셈이다.

영진약품도 버려진 재고와 가치하락으로 인해 영업이익에서 20억 원이 줄어들었다. 이는 전체 영업손실(69억원)의 30%를 차지하는 규모인 만큼 이 회사의 수익성 저하에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재고자산 손실 규모가 영업이익을 넘어선 곳들도 무더기로 나왔다. 대표적으로 신풍제약과 메디톡스의 경우 영업이익이 각각 7백만 원, 1,600만 원에 불과했지만, 두 회사의 재고 손실액은 각각 7억 원, 2억 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기업의 재고 손실액이 이익을 초과한 셈이다.

≫ “매도 일찍 맞는 게”…선제적 재고떨이, 수익성 악화 '탈출'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재고 덕에 오히려 이익이 난 대표적 사례였다.

사실 이 회사가 보유한 재고의 현재 가치는 2조1,430억 원으로, 이는 당초 취득가 2조1,570억 원보다 0.6%(139억원) 떨어진 수준이다.

하지만 회사는 이미 지난 기에 222억 원의 손실액을 장부에 대거 반영하면서 올 들어 오히려 112억 원의 이익을 챙기게 됐다. 늘어난 영업이익만 10.4% 규모다.

이처럼 현재 재고의 시가가 취득 당시의 가치를 뛰어넘으면서 재고 평가 이익이 발생한 곳은 에스디바이오센서(81억원), 제일약품(9억원), 부광약품(8억원), 화일약품(3억원), 삼진제약(1억원) 등이었다.

이처럼 기업이 하락한 재고의 가치를 미리 털어내고 갈 경우, 다음 결산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재고자산은 이미 지불된 물품으로 사실상 현금과 다를 바 없다”면서 “다만, 재고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생산 낭비와 잉여관리에 따른 비용 등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매출 속도가 받쳐준다면 일정한 재고 규모는 기업 성장을 높여주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잠재적인 리스크로 판단해야 한다”며 “경영환경에 맞춘 기업별 재고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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