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 하나 문제에 295개 제품 회수…복합제 183개 제품
여전히 제네릭·개량신약에 올인하는 국내사 ‘아이러니’
“국내 수익구조 변하지 않는 이상 오염약 문제 반복될 것”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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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치료제에서 불순물이 나왔다. 회수 대상이 된 제품은 295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내 제약사들이 ‘개량신약’이라고 자부하던 복합제만 183개나 포함됐다. 개량신약을 복제약(제네릭)으로 취급하지 말라던 국내 제약계의 현주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일 고혈압 치료제로 쓰이는 로사르탄 성분에서 아지도(azido)라는 불순물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식약처가 로사르탄 성분이 함유된 306개의 제품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조사한 결과다.

식약처에 따르면, 아지도 불순물의 하루 섭취 허용량인 1.5㎍을 초과했거나 초과 검출이 우려되는 품목은 295개에 달했다. 이들 제품은 전체 또는 일부 회수 절차에 들어간다. 다만 판매중지 등의 행정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아지도 불순물이 초과 검출된 로사르탄 의약품을 복용한 환자의 영향도를 평가한 결과, 암 발생 가능성은 10만 명당 0.54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며 “이는 무시 가능한 수준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인체에 큰 문제는 없지만, 아지도 불순물이 초과 검출된 제품들을 회수하겠다는 것.

그렇다면 이로써 불순물 사태는 일단락 되는 걸까.

문제는 로사르탄 사태로 또 다시 국내 제약산업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한 가지 성분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수 백개의 관련 제품이 얽혀 들어갔다.

≫ 과거 발사르탄 사태, 국내 회수 제품 115개…시장 20배 큰 미국선 10개 불과

지난 2018년, 발사르탄 성분 제품에서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라는 발암 가능성을 가진 물질이 초과 검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발사르탄 사태는 유럽의약품청(EMA)과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중국 제지앙 화하이社의 원료의약품에 대한 수입·판매 중지 조치를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발사르탄 성분이 함유된 제품에 대한 회수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역시 관련 제품의 제조·수입을 중단하고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국내에서 회수 조치된 품목은 54개 업체의 115개 제품이었다. 의약품 시장이 국내에 비해 20배 이상 큰 미국에서도 3개 업체, 10개 제품만 회수 조치된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미국 뿐 아니라 영국도 2개 업체, 5개 제품, 캐나다 6개 업체, 21개 제품이 회수 조치됐다. 이들 모두 우리나라에 비해 의약품 시장이 더 큰 국가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국내 제약기업들은 한 가지 성분의 특허가 만료되면 수 백종의 복제약을 만들어내거나 또 다른 특허만료 성분까지 붙여 개량신약이라는 이름으로 복합제를 시장에 내놓는다.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 제네릭과 복합제는 대규모 임상시험과 같은 개발비가 전혀 들지 않고 오리지널과의 생물학적 동등성만 입증해내면 판매가 가능하다. 시장에 내다 파는 만큼 남는 장사가 가능한 셈이다.

그러면 왜 해외 선진국에는 제네릭과 복합제의 종류가 많지 않을까. 소규모 제약사가 값이 싼 복제약을 판매해봐야 사실상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 생산망과 유통망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국내의 경우 복제약의 약가가 오히려 오리지널 보다 높은 기현상도 발생한다.

실제로 발사르탄 사태 당시 연루됐던 제네릭 상당수는 오리지널 제품인 노바티스의 디오반 보다 약가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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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제만 팔아도 충분한 국내 제약산업…“한 성분 수 백종 복합제, 계속될 것”

국내 제도상,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고 이를 복제해서 만들어진 제네릭이 출시된지 1년이 지나면 복제약과 오리지널의 약가는 동일해진다. 최근 약가제도 개편으로 제네릭 가격이 차등화됐지만, 여전히 최대 19개 복제약까지는 오리지널과 동등한 약가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약가가 같다면 사실상 의료진은 복제약을 처방할 이유가 없다. 제네릭의 유일한 장점이 가격이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영업활동을 통해 소규모 처방을 끌어내고 높은 제네릭 약가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 등 불법적인 영업활동도 만연해 있다.

이 구조를 탈피하겠다고 국내 제약사들이 내놓는 제품이 바로 개량신약이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은 시간이 지나면서 2제나 3제와 같은 복합 약물로 혈압과 당수치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 특허가 만료된 여러 성분을 한 알에 집어 넣어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개량신약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개량신약의 약가를 우대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당장은 신약 개발 역량이 떨어지니 개량신약부터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논리다.

일부는 이뇨제나 또 다른 특허만료 혈압 강하 성분인 암로디핀과 합쳐 복합제를 만들기도 한다. 오리지널 제품과의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수 대상이 된 제품 가운데 로사르탄 복합제만 183개다. 성분별 용량이 동일한 제품도 수 십종이다. 복합제라고 해서 제품력까지 담보한다는 논리를 두고 틀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인 것.

익명을 요구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메디코파마뉴스>와의 통화에서“만성질환 치료제는 회사별로 제네릭과 복합제를 갖고 있다. 생산단가가 낮으니 처방만 끌어내면 곧바로 매출이 되기 때문”이라며 “국내 제약사들의 캐시카우로서 제네릭, 복합제 판매가 중요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구조에서 향후 또 다른 성분이 문제가 되더라도 수 백종의 제품이 연루될 것이 자명하다. 경쟁력을 갖췄다며 내놓는 개량신약은 제품력과 무관하다”라며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수익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한 성분에 수 백종의 개량신약이 출시되는 국내 환경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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