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불균형·지연공시에 주가 급등락...피해는 ‘투자자 몫’
불성실공시 10곳 중 2곳 제약바이오기업…신뢰성 ‘추락’
불성실공시 ‘주홍글씨’ 1년간 낙인…주가 발목 ‘부메랑’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을 향한 투자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일부 기업들이 마구잡이식 불성실공시를 일삼으면서 이들이 내놓는 정보의 신뢰성에 금이 갔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만 씨젠의 부정회계, 에이치엘비의 임상 해석 문제가 논란으로 이어지자 헬스케어 업종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고 이는 결국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배경이 됐다.

앞서 부정회계 처리가 발각된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제재에 나선 바 있다. 실제 올해 회계 처리 위반으로 적발된 제약바이오기업은 씨젠, 엘앤케이바이오, 알파홀딩스 등이다. 이들 기업에겐 과징금과 임원 해임 권고 등 제재가 내려졌다.

진단키트 대표주인 씨젠은 매출과 매출원가, 개발비를 부풀리고 전환사채의 유동성을 미분류하는 회계기준 위반이 확인됐다. 의료장비 업체인 엘앤케이바이오는 매출 과대계상이 적발됐다. 바이오 사업을 하는 알파홀딩스는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내역을 누락하고 투자관련 자산의 손실 부분을 미계상하면서 회계처리기준 위반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은 투자자들을 향했다. 진작에 극심한 변동 폭을 보인 주가로 인해 업종 전반의 시세가 급변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2일 기준 올해 종합주가지수는 3.86% 상승한데 반해, 코스피 의약품지수는 17.63% 하락했고 코스닥 제약지수 역시 20.92% 급락했다.

이는 기업의 유일한 객관적 자료로 통하는 ‘공시’마저 불신하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의 이 같은 의구심은 합리적인 걸까. <메디코파마뉴스>는 올해 한국거래소 전자공시를 토대로 불성실공시로 지정된 기업들의 사례를 하나하나 짚어봤다.

분석 결과, 올해 한국거래소에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수는 23일 기준, 총 120건(104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의료기기를 포함한 제약바이오와 관련한 건수는 28건(25개사)으로 집계됐다. 공시를 불성실하게 한 10곳 중 2곳 이상은 제약바이오기업이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케어젠,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 디엔에이링크는 2회 이상 불성실공시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신뢰성이 부족한 기업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제약바이오 불성실공시 유형에는 공시 불이행과 공시 번복이 대다수였다. 공시 불이행은 주요 경영사항 등을 공시하지 않거나 중요 사항을 누락 또는 지연 공시한 경우다. 공시 번복은 이미 신고·공시한 내용에 대한 전면 취소나 부인했을 때를 의미한다.

공시불이행 기업으로는 안트로젠, 디엔에이링크, 에스씨엠생명과학, 엠엔씨생명과학, 유바이오로직스, 크로넥스, 크리스탈지노믹스, 피씨엘, 헬릭스미스, 지나인제약, 하나제약, 부광약품 등이 해당됐다.

공시번복에 지정된 곳은 경남제약헬스케어, 세종메디칼, 쎌마테라퓨틱스, 에스엘바이오닉스,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 인트로메딕, 제넨바이오, 케어젠, 한창바이오텍 등이았다.

공시변경으로 제재를 받은 곳은 한스바이오메드와 레이 두 곳이었다.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은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공시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거나 불이행하는 등 위반이 발견됐을 때 한국거래소가 기업에 주는 일종의 패널티 제도다. 경중에 따라 벌점이 나올 수 있으며, 부과된 벌점이 10점 이상일 경우 1일간 매매가 정지된다. 만약, 누계 벌점이 15점 이상일 경우 개선계획서 제출과 관리종목 지정이 가능한데 이후에도 1년 안에 또 15점 이상 벌점을 받게 되면 상장폐지에 대한 심사를 받게 된다.

불성실공시에 따른 기업별 벌점 규모를 보면, 디엔에이링크(13점), 쎌마테라퓨틱스(8점), 제넨바이오(7.5점), 경남제약헬스케어(6점), 한스바이오메드(5점), 세종메디칼(5점), 케어젠(5점), 지나인제약(5점), 헬릭스미스(4점), 하나제약(4점),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4점), 엠엔씨생명과학(3점) 등이 올해 3점 이상의 벌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 2021년 제약바이오기업 불성실공시 현황(출처: 한국거래소 전자공시 시스템, 메디코파마뉴스 재구성)

≫ 정보의 비대칭 ‘심각’…한 템포 느린 지연 공시, 투자자 피해 ‘속출’

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유바이오로직스가 불성실공시의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투자 판단의 중요한 사안을 6개월이나 늦게 공시했다. 코로나19 예방 합성항원 백신인 ‘유코백-19’의 1/2상 임상시험계획(IND)의 승인신청과 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을 누락한 것이다. 회사 측은 이를 중요 공시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해 보도자료로만 투자자들에게 알렸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 회사의 주가는 사유 발생 시점인 작년 12월 11일 2만1,100원에서 공시일인 올해 7월 6일 4만2,600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공시 이후부터 지난 12월 22일까지 이 회사의 주가는 8,000원 하락한 3만4,400원으로 거래돼 18.8% 급락한 상태다.

진단키트 기업인 피씨엘은 미국의 수입사와 얽힌 100억 원대의 소송 제기 신청과 관련한 사항을 지연 공시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30일 해당 사유가 발생하고도 이를 7월 5일에서야 알렸다. 결국 공시 당일 피씨엘의 주가는 16.7% 하락했다.

코넥스 기업인 엠앤씨생명과학도 대출원리금 연체 사실(발생일 1월18일)을 1월 26일이 되서야 뒤늦게 공시했다. 이 회사의 주가는 연체 발생 전인 1월 12일부터 15일까지 3거래일간 32% 급락했고 공시일인 26일 당일에도 15% 떨어졌다.

≫ 공시 불이행서부터 번복까지…제멋대로 변경도 ‘속출’

지나인제약은 자회사 주식의 양도 결정과 이를 철회한 공시를 지연하면서 공시불이행과 번복에 대한 제재를 받았다.

당초 이 회사는 종속회사인 코렌필리핀의 지분을 1EVOLUTION MARKETING RESEARCH社에 1,300만 달러(약 155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이를 취소했다. 양도 결정에 대한 사유는 실제 2월 27일 발생했지만 지나인제약은 이를 4월 13일 공시했다. 이 기간 이 회사의 주가는 36.3% 급등했다.

제멋대로 공시를 변경한 사례도 있었다. 한스바이오메드는 인공유방보형물(BellaGel)과 관련한 멕시코판매 계약분(최초 2016년 9월 27일)이 절반 이상 변경되자 공시를 정정했다. 당초 계약금액은 약 30억 원 수준이었지만 14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앞서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13일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실리콘겔 인공유방’에 대한 판매중지 및 회수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한스바이오메드는 이 내용을 3일이 지난 16일에서야 공시하면서 불성실공시 법인에 지정됐다. 공시 발표 전인 13일 이 회사의 주가는 하한가(30%↓)를 맞은 바 있다.

레이社 역시 덴탈 마스크 계약금액을 당초 110억 원 규모에서 72억 원으로 정정하면서 수정 공시한 바 있다.

≫ ‘티 잘 안나는’ 공시번복…공급계약 해지, 유상증자 철회 등 '심각'

공시번복 사례는 대부분 공급계약(단일판매)의 해지와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하는 것에서 다빈도로 나타났다.

실제로 경남제약헬스케어, 디엔에이링크, 인트로메딕, 케어젠, 한스바이오메드, 한창바이오텍 등이 주요 계약의 공급 해지로 인한 공시번복 사례에 해당했다.

또 다른 공시번복 사례는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를 취소한 제넨바이오와 세종메디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에스엘바이오닉스와 쎌마테라퓨틱스는 타 법인의 주식을 취득하기로했다가 이를 철회한 경우였다. 이 외에도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는 자기주식 처분과 전환사채발행 취소로 2번의 번복 공시를 범했다.

한편, 상당수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불성실공시를 일삼은 가운데 모범적으로 공시를 운용한 곳도 있었다. 유한양행과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최근 한국거래소가 선정한 2021년 유가증권시장 공시 우수법인에 선정됐다.

제약바이오업계에 정통한 증권가 전문가는 “불성실공시 기업으로 지정되면 기업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주가에도 악영향을 준다”면서 “제약바이오기업은 산업 특성상 신뢰도가 생명인 만큼, 투명한 공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코스닥 일부 기업의 경우, 고의성은 없지만 전문인력 부족에 따른 관리 소홀로 불성실공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별 공시 역량 강화도 함께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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