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건강보험 시스템의 역설…제네릭 난립과 신약 접근성 취약
의약품 재평가 시동…‘기형적’ 복제약 시장구조 개선 원년되나
항암신약 보험 급여는 '뒷전'…"신약 접근성 확보는 해결 과제"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해를 넘어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021년 또한 관통했지만, 정부의 제약정책 드라이브는 2020년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대형 제약정책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2020년이 팬데믹으로 인한 제약정책의 일시 정지 상태였다면, 2021년은 본격적인 약제비 관리 제도 정착의 원년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들 정책이 향후 장·단기적으로 제약산업과 국민건강보험의 장기 지속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것은 아직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약제비 적정 관리의 일환으로 추진된 기등재 의약품 재평가의 세부 정책들과 기형적인 국내 복제약 시장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올해 본격 도입된 정책들은 향후 제약산업과 국민건강보험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메디코파마뉴스>는 2021년 정부의 주요 제약정책을 돌아보고 그 의의를 분석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재평가’ 본격화…콜린 제제 이어 본사업 ‘시동’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보험 급여 등재는 의약품의 존폐 여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준조세 개념을 통해 전국민에게 건강보험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적은 부담으로 의약품을 사용하고 제약사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

정부와 제약사는 급여 등재의 조건과 약가에 대해 협상을 진행한다. 이 때 제약사는 수익창출을 고려하고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장기지속성을 고민하며 합의점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이 같은 협상은 고령화와 초고가 신약의 등장 등으로 최근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약제비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다. 단순히 개별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만으로 장기적인 재정 지속성 유지가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정부가 내놓은 방법이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재평가’ 기전이다. 기등재 의약품을 여러 방식으로 재평가해 급여기준 조정이나 약가 인하, 급여 퇴출 등을 진행하겠다는 것.

대표적인 사례이자 첫 케이스가 2019년 뇌기능 개선제 콜린 알포세레이트 성분의 급여기준 변경이다.

콜린 알포세레이트는 2019년 연간 청구액이 3,5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품목이었지만,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대부분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첫 타깃이 됐다는 평가다.

현재 제약계는 반발하며 소송전과 함께 임상시험을 통한 재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8월 정부는 콜린 알포세레이트에 이어 기등재 재평가의 본사업으로 ▲비티스비니페라(포도씨추출물) ▲아보카도-소야 ▲빌베리건조엑스 ▲실리마린(밀크씨슬추출물) 등 4가지 생약 성분에 대한 재평가 결과를 내놓았다.

이 중 비티스비니페라 성분의 혈액 및 망막·맥락막 순환 치료 적응증 외에는 급여적정성이 없다는 게 정부의 결론이었다.

이 결과를 통해 52개 제약사의 52개 품목 의약품이 급여목록에서 이 달 삭제됐다. 이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 실제 중단이 이뤄진다. 일부 제품은 조건부로 급여목록에서 살아남았지만, 1년 이내에 임상적 유용성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 외에도 올해 9월, 의약품 가격 설정 과정에서 가산 혜택을 받았던 475개 품목에 대한 정부의 재평가도 기등재 의약품 관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마련된 재평가 제도를 통해 가산 종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기전이 올해 본격 실시된 것.

이번 재평가에서 416개 품목의 가산이 종료됐다. 평균 약가 인하율은 17.8%였다.

현재 관련 제약사 가운데 일부는 가산 종료로 인한 약가인하를 취소하려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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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암신약 급여 등재 여전히 ‘난항’…초고가 신약 보험 문제도 ‘산적’

정부의 약제비 관리에는 이면이 있다. 해외에서는 널리 쓰이고 있는 약제도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국민건강보험 등재까지 걸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와 MSD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이다.

이들 두 항암제는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1차 치료 적응증을 두고 수년째 건강보험 허들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두 약제의 급여등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타그리소는 EGFR 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되는 표적치료제다. 이 약은 지난 2017년, 1차로 기존 표적치료제를 사용한 뒤 T790M 변이로 인한 내성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2차 치료제로 국내 허가와 급여를 잇따라 획득한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1차 치료제로 국내 허가를 획득한 뒤, 보험 급여권 진입에 3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타그리소는 기존 치료제와 달리 뇌에 전이된 암세포에 대해서도 효과를 보이며 세계 시장에서 1차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2019년 발표된 FLAURA 임상 결과에서 이 약이 아시아인에게는 효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급여권 진입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동양인에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임상 자료를 제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키트루다의 경우도 비슷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면역항암제인 이 약은 현재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 급여 등재돼 있다.

하지만 2017년 허가를 획득한 1차 치료제 적응증에 대한 급여 등재는 미뤄지고 있다. 키트루다의 경우 임상 데이터의 문제라기보다는 높은 약가가 형성된 상황에서 대상 환자가 많다는 데 있다.

정부는 MSD 측에 재정분담을 요구하고 있지만, 양측의 분담 수준에 대한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며 급여권 진입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우여곡절 끝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조건부로 통과했지만, 여전히 이 약의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급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타그리소, 키트루다와 같은 보험 급여의 지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급여 등재를 모색하는 초고가 신약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급여가 적용되는 초고가 신약을 기다리는 환자와 제약사의 입장,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장기지속성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내년에는 도출될 수 있을까.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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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가 차등제·1+3 공동생동 제한 ‘본격화’…복제약 시장 개편 가능할까

국내 제네릭 시장은 ‘난립(亂立)’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한 가지 오리지널 성분의 특허가 만료되면 수십 종의 제네릭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모양새다. 시장 수요가 큰 성분의 경우 수백 종의 복제약(제네릭)이 한꺼번에 출시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복제약 우대 정책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신약 개발 역량이나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복제약을 판매하는 국내 제약산업에 혜택을 퍼줬다.

대표적인 혜택이 단일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에 허가받을 수 있는 제품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과 특허 만료 1년이 지나면 오리지널 의약품과 복제약이 동일한 가격을 받을 수 있게 한 약가 제도다.

실제로 영세한 제약사라도 공동으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통해 저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불법 리베이트 등을 이용해 복제약을 높은 가격에 판매해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

이 구조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된 것은 지난 2018년 고혈압 치료제에서 발암우려물질인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가 검출된 일명 ‘발사르탄 사태’ 이후 정부가 제네릭(복제약) 종합대책을 추진하면서 부터다. 당시 이 대책의 두 축은 ▲계단식 약가제도 재도입과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규제였다.

계단식 약가제도는 ▲자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여부 ▲등록된 원료의약품의 사용 여부 등 두 가지 기준에 대한 충족 여부에 따라 제네릭 약가를 차등하는 제도다. 여기에 등재 순서에 따라 21번째의 동일성분 제품부터는 순차적으로 15%씩 약가를 더 인하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지난해 7월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다만 이미 등재된 복제약에 대한 적용은 3년 간 유예하기로 했다.

문제는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규제였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1개의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4개의 제품까지만 허가를 획득할 수 있도록 했지만, 다음 해인 2020년 대통령 직속 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가 이를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이대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규제는 올해 3월 임의조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일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를 4곳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1+3 공동생동 규제’를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6월에는 해당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며 7월 본격 시행됐다. 정부 차원의 제도 개혁이 난항을 맞자 국회를 통한 입법으로 제도 개편이 이뤄진 것.

다만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규제는 없던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6년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조작 사건이 발생하면서 후속조치로 2007년 공동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대한 규제가 마련된 적이 있다.

단일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를 2개로 제한한 것인데 이는 2년 만에 폐지됐다. 이유는 제네릭 활성화였다.

이번에 시행된 제도가 정착기를 거쳐 난립하는 국내 복제약 시장을 개편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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