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약품 시장 기형 구조…해외선 특허만료 시 가치 ‘폭락’
지난해 원외처방 상위 20개 가운데 ‘특허 유지 제품’ 1개 불과
제네릭 우대정책이 만든 ‘촌극’…제품 경쟁력 대신 ‘영업력’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지난해에도 국내 제약산업의 기형적인 구조는 이어졌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매하는 우리나라의 원외처방 판매구조에서 특허만료 의약품들이 작년 국내 의약품시장 상위권을 장악한 것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2021년 원외처방액 상위 20개 의약품 가운데 특허가 살아있어 제네릭을 판매할 수 없는 경우는 HK이노엔의 역류성식도염 치료제 케이캡(성분명 테고프라잔)이 유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19개 제품은 해당 성분의 특허가 만료돼 이미 시장에 복제약(제네릭)이 나와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합성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해당 오리지널 제품의 가치는 폭락한다. 합성의약품은 성분과 구조만 공개되면 손쉽게 복제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네릭들은 소수의 대형 전문 제약사들에 의해 시중에 값싸게 유통된다.

오리지널 제약사들은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 의약품을 만들어 시장 수성에 나선다. 특허가 만료된 기존 오리지널 제품은 서서히 뒤안길로 사라지는 글로벌 제약시장의 일반적인 수순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한국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특허 만료에 따른 제네릭 출시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 인하를 가져오지만, 제네릭의 약가경쟁력이 추가로 오리지널 시장을 빼앗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우리나라의 의약품 약가 책정 구조를 감안하면 복제약이 오리지널 시장을 빼앗는 일부 현상이 오히려 의아하다는 설명이다.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약가가 사실상 똑같은 상황에서 제네릭을 처방하는 것은 영업력 외에 설명이 안 된다는 것. 이 영업력에는 이른바 ‘알값’으로 불리는 불법 리베이트도 포함된다.

≫ 원외처방액 상위 20위권 의약품 가운데 19개가 특허만료 성분

의약품 시장조사 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원외처방액을 기록한 의약품은 비아트리스의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리피토(성분명 아토르바스타틴)였다. 이 약은 지난해 2,052억 원의 원외처방액을 올리며 2년 연속 2,000억 원을 돌파했다.

리피토의 특허가 만료된 때는 2008년이었다. 특허만료 이후 시장에는 100여종의 아토르바스타틴 성분의 단일제 복제약이 출시됐다. 제네릭 출시 후에도 오리지널 약의 매출이 더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토르바스타틴 단일제의 대표적인 제네릭 제품은 유한양행의 아토르바, 종근당의 리피로우, 동아에스티의 리피논 등이다.

10mg 기준으로 약가를 살펴보면 리피토는 642원, 아토르바 662원, 리피로우 659원으로, 633원인 리피논만 오리지널 제품보다 가격이 낮았다. 제네릭의 존재 이유인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지난해 리피토 다음으로 원외처방 규모가 큰 의약품은 한미약품의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성분명 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이었다. 이 약은 지난해 1,232억 원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했다. 로수젯은 이상지질혈증을 치료하는 로수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 두 성분을 합쳐 만든 복합제다.

로수젯이 2015년 출시됐을 당시 로수바스타틴(오리지널 의약품 크레스토)의 특허는 이미 만료돼 있었고, 에제티미브 성분은 특허만료 6개월 전 특허권을 보유한 MSD와의 별도 계약을 통해 복합제 제네릭을 출시할 수 있었다.

현재 로수바스타틴, 혹은 리피토의 성분인 아토르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를 합친 복제약은 시장에 100종 이상 출시돼 있다. 이들 모두 복합제인 만큼 오리지널과 구분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노피의 항혈전제 플라빅스(성분명 클로피도그렐)도 지난해 1153억 원 규모의 원외처방액을 기록했다.

이 약의 특허가 만료된 건 지난 2007년이었다. 플라빅스 복제약 역시 시장에 100여종 이상 나와 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은 오리지널 약보다 가격이 높고, 설령 약가가 낮더라도 큰 차이는 없다.

이 같은 현상은 연간 원외처방액 상위권 제품 대부분에서 나타난다. 상위 20위권 의약품 가운데 19개 제품은 이미 특허가 만료된 성분이다.

복제약이 수 백종 출시되더라도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네릭을 처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복제약의 유일한 경쟁력은 가격이다. 다만 이 정의는 국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 제네릭 우대정책이 만든 ‘촌극’…복제약 경쟁력, 약가 아닌 영업력서 찾는 구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제약사는 합성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마케팅을 이어간다. 글로벌 시장에서 특허만료 이후 수년 내에 마케팅을 종료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제네릭의 가치를 높게 책정하는 국내 약가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오리지널의 특허가 만료되고 1년이 지나면, 제네릭과 오리지널 모두 특허만료 이전 약가의 53.55%로 가격이 책정된다. 다시 말해 복제약의 가치를 오리지널의 53.55%까지 인정한다는 뜻이다. 수 조원에 이르는 개발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는 제네릭을 팔아 올린 수익으로 국내 제약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논리에서 나온 시장 구조다.

이 논리는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시행 이후 계속돼 왔다. 결과는 어떨까.

현재 국내 제약사가 개발해 글로벌 의약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신약은 안타깝게도 없다. 여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의약품이 즐비한 국내용 신약들만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수준의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할 개발비용과 역량을 가진 제약사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후보물질을 개발하더라도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다국적제약사로 넘기나 1조 원 이상의 돈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연구개발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다는 한미약품 조차 연간 비용이 2,000억 원대에 불과하다.

대신 제약사의 숫자는 늘어났다.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 존재하는 제약사만 466곳에 달한다. 그러나 늘어난 기업 대부분은 모두 중소제약사다.

이들 중소사는 제네릭 판매에만 몰두한다. 신약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해낼 여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단지 소규모 업체들은 높은 제네릭 약가를 기반으로 영업력을 이용한 소규모 처방 유인에만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베이트 등 불법적인 일들은 국내 제약업계에 비일비재하다.

제네릭 우대정책이 만든 촌극이다. 이 촌극은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제약사의 한국지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시장에서는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수익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메디코파마뉴스>와 만난 다국적제약사의 한국인 CEO는 특허만료 의약품의 매출 확대에 대한 본사의 시각에 대해 “한국시장은 특허가 만료되더라도 수익 확대가 가능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며 “다른 지역에 비해 특허만료 의약품의 매출이 잘 나오다 보니 수익을 더 창출하라는 압박까지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메디코파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