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따라 바뀌는 임기응변식 방역 정책, ‘키트 대란’ 키워
오미크론 팬데믹 정점 ‘예측 불가’…심화되는 ‘수급 불균형’
신규 허가 업체 생산라인 가동 시간 필요…혼란 지속 전망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제공

자가검사키트 대란이 결국 현실화 됐다. 정부가 급하게 허가 제품을 대폭 늘리며 물량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할 방역 정책이 임기응변식으로 수립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까닭이다.

최근 자가검사키트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정부가 60세 이상 고위험군만 PCR 검사를 즉시 받게 하고, 나머지는 신속항원검사를 먼저 진행하도록 진단 체계를 변경한 지난 3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된 일이다.

당시 정부는 자가검사키트 물량이 충분 만큼 자가검사키트 대란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 8일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내 자가검사키트 일일 최대 생산량이 총 750만 개에 달한다”며 “물량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진단 체계 전환 이후 현재까지 수급 부족 현상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고, 유통·판매 현장에서의 혼란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는 것.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물량 수급 안정을 위해 국내 품목 허가 제품을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늘리고 있다.

실제로 기존 국내 허가 제품은 휴마시스(허가일 2021.4.23), 에스디바이오센서(2021.4.23), 래피젠(2021.7.13) 등 3개사 3개 제품에 불과했지만 이달 들어 젠바디(2.4), 수젠텍(2.4), 에스디바이오센서(2.11), 메디안디노스틱(2.15), 오상헬스케어(2.15), 웰스바이오(2.17) 등 6개사 6개 제품이 추가됐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이 진단 체계 전환에 앞서 충분한 논의 없이 급작스럽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시계를 지난해 4월로 되돌려 보면, 당시 방역 당국은 자가검사키트의 현장 활용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인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자가검사키트의 국내 허가 기준을 높게 설정해 뒀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자가검사키트를 폭넓게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내수용과 수출용 자가검사키트 허가 개수가 차이를 보이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진단업계에서는 오미크론 확산세가 아니었다면 정부가 허가 품목을 지금처럼 갑자기 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급한 정부가 방역 기조를 순식간에 뒤집었다는 얘기다.

이는 자가검사키트 허가와 관련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최근 보도자료에서도 정부의 속내가 읽혀진다.

이달 허가된 6개 제품 모두 ‘민감도 90%, 특이도 99% 이상의 기준을 충족했다’는 문구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곧 심사가 진작부터 마무리됐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진단키트 업체 관계자는 “국산 자가검사키트가 제품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전 세계에 수출됐지만 국내 규제기관은 까다로운 기준을 내세우며 외면했던 게 사실”이라며 “최근 무더기로 품목 허가를 내줬다는 것은 이미 심사를 마무리한 제품에 대해 허가를 고의로 지연시켰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품목 허가 제품들이 늘어난 만큼 현재의 자가검사키트 대란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단 기존 업체들의 경우, 정부의 진단 체계 전환 이후 물량 수요를 맞추기 위해 24시간 비상근무 태세에 돌입한 상태다. 최근 인력과 설비를 확충하고, 해외 수출 계약분까지 국내에 우선 공급하는 쪽으로 조율에 나서고는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을 크게 늘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언이다.

신규로 품목 허가를 받은 업체의 물량도 당장 시장에 나오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국내용 제품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원부자자재 발주에 일정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일 품목 허가를 받은 수젠텍과 젠바디社의 자가검사키트는 아직 현장에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진단 체계 전환 과정에서 자가검사키트 수요에 대한 대응을 얼마나 안일하게 했는지 재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진단키트 업체 관계자는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자가검사키트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생산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달 품목 허가를 받은 제품이 늘긴 했지만 대량 생산 라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급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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