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남성 용인 응급실서 아내 사망하자 낫 들고 의사 내리쳐
의료계, ‘살인미수’ 규정…계획적인 범죄에 엄중한 처벌 촉구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위한 정부 재정 지원・처벌 규정 강화 필요

▲유토이미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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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임세원법’이 제정됐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의료인 폭행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용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이던 의사가 70대 남성이 휘두른 낫에 목이 찔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의료계는 한 목소리로 이 사건을 ‘살인미수’로 규정하고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한편,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과 처벌 규정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74세 남성 A씨가 근무 중이던 응급의학과 의사 B씨에게 다가가 품에 숨기고 있던 낫을 꺼내 B씨의 목 부분을 내리쳤다.

B의사는 뒷목부터 어깨까지 10cm가량 깊은 자상을 입었고 곧바로 응급실로 옮겨져 응급 수술을 받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지난 11일 이 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70대 여성 환자의 남편이었던 A씨는 아내에 대한 치료에 불만을 품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A씨는 당시 심정지로 이송된 환자를 위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응급의학과 의사 B씨에게 ‘선물 드릴 게 있다’며 거짓으로 스케줄을 확인하고, 낫을 소지한 채 병원에 왔던 것이다.

이 같은 소식에 의료계는 발칵 뒤집혔다. 지난 2019년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임세원법’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중상해의 의료인 폭행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A씨의 행위가 계획된 범죄라며 ‘살인미수’로 규정하고 엄벌을 요구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미 ‘임세원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세원법은 지난 2018년 말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상∼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한다. 특히 의료인을 사망케 하는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2019년 8월 임세원법의 후속 입법 격으로 병원 안전을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020년 4월 24일부터 시행된 의료법 시행규칙은 100개 이상 병상을 갖춘 병원·정신병원 또는 종합병원을 개설할 경우 보안 전담인력을 1명 이상 배치하고, 비상상황 시 경찰관서에 신고할 수 있는 비상경보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의료계는 해당 법안이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지난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라남도의사회장을 6년 동안 수행하면서 의료취약지에서 의료인 폭력이 빈번하게 나타났다”며 “특히 지역사회 내에서 이뤄진 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가해자가 토호세력과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아 유야무야 끝내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임세원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의료인 폭행 사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의료인 폭력사건을 막겠다고 강구한다는 대책들이 뒷문, 비상벨, 안전전담요원 등인데 오히려 이 대책들이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로 돌아올 뿐 실효성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뒷문의 경우 주로 임대를 통해 운영하고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설치가 어려운데다 비상벨 역시 비상벨 누른 후 경찰이 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비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한편, 진료실·응급실에서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임세원법에 보안인력 배치를 의무화하도록 했지만 이에 대한 비용은 의료기관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은 엄연히 공익적 영역이므로 의료인에 대한 안전과 보호를 보장하는 일 역시 온 사회가 나누어야 할 공익적 활동인 만큼 정부가 책임지고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찰청은 의사협회와 만나 경찰이 정기적으로 응급의료기관 등 중요한 곳을 순찰차로 방문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논의해야 한다”며 “빠른 시일 내 정치권과 협의해 진료실·응급실에서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공청회를 대한변호사협회 등과 공동 개최하는 등 신속한 입법 추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이번 공청회에서 반의사 불벌 규정 폐지를 공론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해서 재판을 받게 하는 등 처벌할 수 있는 죄이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표명할 경우 처벌을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보복 등의 우려 때문에 의료기관 내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해도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19년 임세원 교수 피습 사건 직후 ▲사회안전망 보호차원으로 의료기관 내 폭행 등 강력범죄 근절법안 마련(반의사 불벌 규정 폐지, 의료인 보호권 신설 등) ▲의료기관안전기금 신설 ▲보안인력 및 보안장비 배치에 대한 정부 비용지원 등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필수요건의 법제화를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의료법 개정안(임세원법)에는 해당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진료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현행 법률이 경찰로 하여금 합의를 종용하도록 부추기고 있는 측면도 존재한다”며 “의료진 폭력을 줄이기 위한 응급실 진료에 대한 인식, 제도, 문화 등의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필수 회장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임세원 교수와 같은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는 의료인 폭행・상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의료기관 내 폭행・상해 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구체적인 제도 개선과 행동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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