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R&D 기획·집행 단일기관 일원화…정책 추진 ‘속도’
부처별 관리, 매몰비용↑…“전주기 관리 컨트롤 타워 필요”

▲ 유토이미지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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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역량을 인정받은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이 신성장 동력으로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부처보다 상위 수준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내 바이오헬스 거버넌스는 분절화·파편화한 상태에서 수직 계열화 돼 있어 정책 방향의 일관성이 부족해 계열 간 연계가 어려운 만큼 혁신생태계 전주기를 포괄하는 시각에서 일원화된 정책 방향과 연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주기 관리 컨트롤 타워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 찍고 전폭적인 투자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도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 윤 대통령은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오는 2026년까지 13조 원의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바이오헬스 혁신방안을 마련했고, 총 500억 원 규모의 바이오 백신 펀드 조성계획도 발표했다”면서 “혁신 의료기기의 평가기간을 대폭 단축한 것처럼 기업 혁신 성장에서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바이오헬스 기술·산업 육성을 위해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에서 경쟁적·분절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주기적 성과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바이오헬스 거버넌스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 英, 부처별 소관 업무 주도적 추진…바이오헬스는 보건사회복지부 담당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최근 발간한 ‘바이오헬스 혁신 거버넌스 비교분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의원내각제 특성상 대통령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별 부처별로 소관 업무를 좀 더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 전담부처 부재로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가 국가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 및 혁신정책·전략을 주도하나 바이오헬스 분야는 NHS를 기반으로 하는 보건사회복지부(DHSC)도 혁신 거버넌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개발 투자는 DHSC 산하 책임 운영기관인 NIHR와 BEIS 산하 공공기관인 UKRI 소속의 MRC가 중추적인 역할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국의 바이오헬스 연구개발의 지향하는 목표를 건강과 경제성과 달성이라는 두 개의 목적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영국은 2005년 당시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가 ‘Best Research for Best Health’라는 R&D전략을 발표함과 동시에 NHS R&D 예산의 불투명 이슈를 고려해 책임운영기관인 NIHR을 설립해 NHS와 분리했다.

재무부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인 Cooksey경의 리뷰 결과를 바탕으로 MRC와 NIHR의 역할이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설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7년에 보건의료연구전략조정국 (OSCHR)을 설립했다.

OSCHR는 DHSC와 BEIS 두 부처 공동 감독을 받으며 일원화된 연구 전략(NIHR과 MRC 전략 일원화)을 수립하고 재무부에 소요 예산을 제출하고 성과를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은 바이오헬스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혁신정책에 있어서도 유사한 정책기조을 펼치고 있는데 지난 2009년 DHSC와 BEIS의 조인트 유닛으로 생명과학국(OLS)을 설치했다.

2018년에는 생명과학위원회(LSC)를 설치해 산업계 대표인 아스트라제네카 대표와 DHSC와 BEIS 장관이 공동의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바이오헬스 분야 혁신성장을 위한 보건의료 및 생명과학 프로젝트 추진, 혁신정책·전략, 투자와 통상·규제 관련 이슈까지도 관여하고 있다.

OLS 대표 성과로는 50만 명 규모의 바이오 뱅크 사업 추진, 영국 바이오헬스 혁신의 새로운 엄브렐러 조직인 AAC(the Accerlerated Access Collaborative) 설립과 MSD로부터 10억 파운드 UK Discovery Hub와 UCB로부터 10억 파운드 Global R&D Hub 투자를 확보했다.

≫ 美, 대통령실이 국가 차원 정책 우선순위 및 방향 설정

미국의 경우 그동안 대통령실이 국가 차원의 정책의 우선순위 및 방향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과학기술정책과 투자 거버넌스는 과학기술전담 부처가 없어 개별 연방부처 중심으로 다원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범부처 R&D사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연방부처와 기관 간의 긴밀한 연계 및 협력 촉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조정자 역할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바이오헬스 혁신정책은 보건복지부(HHS)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연구개발은 HHS 산하의 NIH에서 27개 연구소·센터를 통해 내부 연구(intramural research)와 외부 연구(extramural research)에 병행해 투자·집행했다.

그러나 NIH 산하 27개 연구소·센터가 독립적인 법에 기반해 운영되다 보니, 연구소 간 협력이 미흡해 융합연구가 필요한 중요한 이슈에 대한 부재 영역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06년에 NIH 개혁법(NIH Reform Act)을 통해 NIH 원장의 기획·조정기능을 강화했다.

이 NIH 산하 연구소 간 융합연구(범-NIH 연구) 지원을 통해 5∼10년 기간 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단일 연구소·센터로 해결이 어려운 이슈 해결을 위해 공동기금(Common Fund)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공동기금은 주로 변혁적 발견·방법, 데이터 자원 구축·관리 촉진, 임상·중개연구 프로세스 재설계와 관련된 분야에 투자되며 최근 3년간 매년 약 6.5억 달러 규모로 조성됐다.

특히,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은 대통령실 과학기술정책국(OSTP)의 국장과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PCAST)의 공동의장직을 겸하고 있으며,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부처 R&D사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코로나19 팬데믹 경험으로 범부처 차원의 조정자인 대통령실의 역할이 증대됐다.

이에 따라 바이든 정부는 OSTP 국장을 내각 구성원으로 격상했으며, OSTP는 대통령이 의장이며 과학기술분야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NSTC의 사무국 역할을 수행하면서 과학기술분야 예산 검토·분석을 통해 대통령실 예산관리국(OMB)을 지원한다.

바이든 정부에서 건강 및 생명과학 분야의 중요성을 고려해 2021년에 OSTP 국장으로 브로드연구소장인 유전학자 에릭 랜더를 선임한데 이어 OSTP 산하에 부국장급 건강·생명과학팀을 신설해 바이오헬스 정책의 조정의 영향력을 강화했다.

또한 바이오헬스 분야 예산 집행과 관련해 NIH 산하이기는 하지만 HHS에 직접 관리받게 되는 형태로 건강 혁신을 촉진하는 새로운 경로를 제공할 ARPA-H를 설립했으며, 이 조직은 DARPA를 모델로 해 프로젝트 매니저(PM)에게 예산과 사업기간 설정 등의 권한을 위임한 형태로 운용될 예정이다.

≫ “韓,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위한 거버넌스 구축 필요”

이처럼 주요국들의 바이오헬스 R&D 기획·집행 거버넌스는 주도하는 부처의 차이가 있지만 단일 기관으로 일원화되어 있어 중복 투자 방지, 프로그램 간 연계 용이, 정책 추진의 속도 제고뿐만 아니라 추진 방향의 일관성 유지 등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바이오헬스 혁신정책을 수립하는데 대통령실 혹은 총리실 중심으로 정책의 총괄조정 기능을 수행하므로 중앙부처 및 유관 기관들 간의 정책 조정이 수월하게 작동할 수 있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반면 국내 바이오헬스 거버넌스는 분절화·파편화한 상태에서 수직 계열화돼 있고 정책 방향의 일관성이 부족해 계열 간 연계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혁신생태계 전주기를 포괄하는 시각에서 일원화된 정책 방향과 연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바이오헬스 혁신생태계는 건강, 과학기술, 경제산업 분야 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다양한 부처와 기관, 이해 관계자들의 관여가 필수 불가결하게 됨에 따라 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정·조율하기 위한 혁신생태계 전주기 관점에서의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중대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혁신 속도를 반영하지 못하는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선으로 별도의 도전적이고 임무 지향적인 혁신프로그램은 기술과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계획의 피버팅(pivoting)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국가재정법에 따른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의 경직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연구 개발비를 ‘총액으로 계상’할 수 있도록 하고 ‘계속비’ 등으로 지원해 사업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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