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개량신약 약가 산정 기준…중소사 R&D 의욕 저해
혁신장려 제도 개선 '뒷전'…건보재정 절감만이 최우선 목표

▲ 유토이미지 사진 제공
▲ 유토이미지 사진 제공

[메디코파마뉴스=이효인 기자] 최근 국정감사에서 대화제약이 개발한 항암제 리포락셀이 언급되면서 개량신약 약가 산정 기준의 문제점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혁신성을 인정받더라도 현행 약가 우대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일반적인 제네릭보다 못한 대접을 감수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중소업체의 연구개발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수년간 귀를 닫은 정부가 과연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냉소적 시선이 업계 전반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다.

대화제약이 개발한 ‘리포락셀(성분명 파클리탁셀)’은 사연이 많은 제품이다.

세계 최초 경구용 세포독성 항암제로 복용 편의성과 기술 진보성을 갖춘 개량신약으로 평가받으면서 지난 2016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시판 허가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투여경로 변경과 관련한 약가 우대 기준 부재로 약가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건강보험 급여 목록 등재에 실패,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비운의 국산 개량신약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배경이다.

현재 개량신약 산정 기준은 투여경로가 같은 ▲염변경 또는 이성체로 개발된 약제 ▲자료제출의약품 중 새로운 제형으로 허가받은 약제 ▲자료제출의약품 중 새로운 용법·용량으로 허가받은 약제로 한정돼 있다.

리포락셀처럼 투여경로 변경으로 개발된 개량신약은 약가 우대 혜택을 받을 법적 근거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협상 대상 약제로 구분된 리포락셀은 오리지널과 제네릭을 합한 가중평균가격을 기반으로 약가 협상에 나서야 했고, 심평원은 제네릭 최저 수준의 약가를 제시했다.

리포락셀 상용화에 17년(1999년 개발 착수 2016년 시판 허가)의 시간과 200억 원 가량의 연구비를 투입한 대화제약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불가능했던 만큼 급여 출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리포락셀 문제가 불거진 당시부터 지금까지 업계 안팎에서는 약가 우대 항목에 투여경로 변경이 추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투여경로 변경 개량신약은 개발 난이도가 높아 시간과 비용이 적지 않게 투입되는 데 적정한 약가가 담보되지 않으면 누가 관련 연구개발에 뛰어들겠냐는 것.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제도 개선 요구에 사실상 귀를 닫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음에도 이를 현실화할 연구개발 역량 증대보다는 건겅보험 재정 절감을 여전히 최우선 목표로 두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리포락셀을 계기로 개량신약 약가 산정의 문제점이 다시 재조명된 것에 대해 반가움을 표시하면서도 당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그동안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이유로 의약품의 혁신성을 판단하는 최우선 기준으로 일관되게 치료 효과를 꼽고 있어서다. 즉 약가를 책정하는 데 있어 복용 편의성과 기술 진보성 등은 부차적인 사안으로 보는 기조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런 만큼 대화제약은 현재 국내보다는 리포락셀의 해외 시장에 진출과 함께 적응증 확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최근 중국에서의 신약 허가 신청과 현재 진행 중인 유방암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 등이 이를 방증한다. 좋은 약이 국내에서 개발되고 허가를 받았음에도 정작 혜택은 다른 국가의 환자들에게 먼저 제공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혁신신약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평가받는 개량신약의 약가 우대 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업계의 목소리를 정부가 지금처럼 외면한다면 자금력이 한정된 중소제약사의 선택은 혜택이 제공되는 쪽으로 편중될 수밖에 없고, 제2의 리포락셀 탄생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미흡한 평가 기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건보재정 절감을 최우선 정책 순위로 두는 게 당장은 나아 보일 수 있지만 산업 경쟁력 강화로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익이 장기적으로 더 클 수 있다는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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