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위원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전체회의에서 의결
의약계, “실손 청구 간소화법 제정 시 보이콧・위헌소송”
환자·시민단체, “청구 간소화 빙자한 민간보험사 돈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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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실손의료보험 보험금 청구를 간소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법안 제정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의약계와 환자·시민단체 모두 반대 입장을 내놔 향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15일 전체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전재수·고용진·김병욱·정청래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등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병합해 위원장 대안으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를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고,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 관련 서류를 의료기관에서 보험회사에 전자적으로 전송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실손의료보험을 청구하려면 보험 가입자가 직접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소액 보험금의 경우 이 과정이 번거로워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면 이런 복잡한 절차 없이 청구할 수 있으며 기업들은 종이 서류 보관 등의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업계의 숙원으로 꼽혀온 이유다.

실제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2009년 국민 권익위원회 권고 이후 13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5일 정무위에서 해당 법안이 의결되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과정만 남게 됐다.

그러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과 관련해 의약계 뿐만 아니라 환자와 시민단체까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 의약계, “보험사 편의성만 보장…전송 거부 등 보이콧과 위헌소송 불사할 것”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보험회사의 편의성만 보장한다며 해당 개정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촉구했다.

의약단체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에서 마련한 보험업법 개정안(대안)의 내용은 국민을 위한 법안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망각한 채 정보 전송의 주체인 환자와 보건의료기관이 직접 보험회사로 전송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데이터 전송 방법을 외면하고 오직 보험회사의 편의성만 보장하고 있어 환자와 보건의약계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동안 금융위원회, 의료계, 보험협회가 참여하고 있는 정부 산하의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11차례 논의를 거쳐 올바른 실손보험 데이터 전송을 위한 방향과 대안을 마련해 나가고 있었으며 그 누구보다 환자와 민간의 입장에서 올바른 입법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다”면서 “그러나 논의된 내용들은 철저히 묵살되고 입법 과정은 무시된 채 보험업계의 입김에 휘둘려 급박하고 무리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녹취록에도 분명 환자와 보건의료기관이 정보 전송의 주체가 되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을 대안에 마련해 추후 심사하겠다고 명시돼 있으나 해당 내용은 대안에 어떠한 형태로도 명문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약계의 주장이다.

의약계는 “보건의약계뿐만 아니라 환자단체, 시민단체도 실손보험 데이터 강제 전송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며 세부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추후에 논의하자는 얄팍한 방법으로 법안을 강제로 통과시키는 행태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해당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 전송 거부 운동 등 보이콧과 위헌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 전송의 주체가 되는 환자와 보건의료기관이 자율적인 방식을 선택해 직접 전송할 수 있도록 법안에 명문화해야 한다”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송대행기관에 정보의 통로만 제공하는 플랫폼은 정보 누출에 대한 관리와 책임만 질 수 있는 기관이면 충분하기에 관의 성격을 가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료율을 정하는 보험개발원은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편의 증진을 위해 보험금 청구 방식·서식·제출 서류 등의 간소화, 전자적 전송을 위한 인프라 구축 및 비용 부담 주체 결정 등 선결되어야 할 과제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국회는 국민과 보건의약계도 반대하는 보험업법 개정안과 관련해 보건의약계가 제안하는 요구사항을 존중해 즉각 해당 보험업법을 폐기하고, 국민과 의료인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대안 마련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 환자・시민단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 환자 진료 기록 약탈법”

환자와 시민단체는 한 술 더 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민간보험사의 환자 진료 기록 약탈법이자 의료 민영화법이라며 법안 제정 논의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와 한국 루게릭 연맹회, 한국폐섬유화 환우회, 보암모,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 환자와 시민단체 등은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4년 동안 소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알려진 개인의료정보 보험사 전자 전송법은 의료 민영화법이라는 시민들의 우려로 가로막혀 왔지만 오늘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됐다”면서 “ 절박한 처지에 놓인 암, 중증환자들에게 어떻게든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며 천문학적 수입을 거두면서도 손해율이 높다고 보험료 인상에 혈안인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의 소액청구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고 이 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험사들이 환자 정보를 자동화된 방식으로 처리하고 프로파일링이 가능한 형태로 축적, 갱신하면 이를 활용해서 환자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점은 너무 분명하다”며 “이 법을 찬성하는 이들은 ‘보험사가 전산 청구 자료를 다른 목적으로 쓰지 않는다’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미 보험사들은 청구 정보를 ICIS(보험신용정보통합조회시스템)를 통해 모두 공유하고 보험 가입 거절 등에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은 정무위에서 중계기관으로 염두하고 있는 보험개발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몇 해 전 삼성생명과 보험개발원은 자체 보유한 개인정보를 다른 영리기업 개인정보와 불법적으로 결합한 바도 있다”며 “가입자 개인정보를 함부로 취급한 보험개발원은 정부와 정무위 법안심사제1소위 국회의원들이 중계기관으로 염두에 두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개발원은 보험사들이 출자해 설립한 보험사들의 연합체이다. 지금도 삼성화재, 교보생명, DGB생명, 하나손보 사장이 임원으로 있고 역대 원장들 다수는 퇴직 후 보험사 부사장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면서 “이런 기관이 ‘공공적 기관’이라며 ‘개인정보를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정부와 정무위 법안심사제1소위 의원들의 주장은 황당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개인의료정보는 최대한 분산되어야 하고 전자적 방식이 아니라 비전자적 방식으로 처리돼야 시민들의 정보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 이와 거꾸로 전자적 방식으로 축적해 보험사에게 넘겨주는 제도화는 소비자의 편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일”이라며 “게다가 한국은 이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가명정보’를 기업들이 서로 주고받고 결합하고 사고파는게 허용한 나라이므로 특히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환자 질병정보의 유출과 상품화 문제가 발생하면 대체 누가 어떻게 책임지냐”고 반문했다.

특히 이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실손보험에 날개를 달아주는 미국식 의료 민영화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다른 목적으로는 쓰지 않는다는 말과 모순되게도 보험사들은 ‘청구가 간소화되면 빅데이터가 쌓여 비급여 심사를 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면서 “보험사는 결국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더 주는 게 아니라 통제하고 삭감하려는 의도이며 더 중요한 것은 보험사가 심사 기능을 강화하고 의료기관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미국식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5년 삼성생명 내부 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민간보험업계의 궁극적 목표는 ‘정부 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라며 “그러기 위해 민영보험도 공보험처럼 의료기관이 환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청구하고, 보험사가 이를 심사해서 의료기관에 보험금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민간보험사는 이를 시작으로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거나 소유해 의료를 좌지우지하는 등 각종 폐단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국의 보험사들도 미국처럼 보험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보험사가 지정하는 치료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며 “보험업법 개정은 이런 의료기관-병원 연계를 만드는 단초이다. 건강보험을 대체하려는 보험업계의 의도가 이 법안 통과에 그렇게 혈안이었던 진짜 이유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무위원회의 법안 심사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16일 정무위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합의된 성문화된 법안도 없이 의견을 먼저 했고 성안을 금융위원회에 위임했는데 이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킨 게 아니라 통과시킨 후 법안을 만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국회가 법안을 성안하지 않고 행정부에 위임했다는 건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당연히 다시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재심사해야 한다. 법안심사1소위 위원장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면서 “사회적 논란이 많은 법안을 이토록 졸속 통과시킨 것은 오직 보험사 이익을 대변하기에만 급급한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정말 소비자 편의를 높이고 싶다면 당장 민간보험사들의 최저 지급률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카지노와 로또에도 최저 지급 기준이 있는데 민간보험은 그런 하한도 없이 완전한 무규제 시장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이런 최소한의 정부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보험사들만을 위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국민건강보험 강화를 꾀해도 모자란 때에 거꾸로 민간보험에 환자의 의료 전자 정보를 넘기며 보험개발원 같은 노골적인 보험사 연합체들에 환자 정보를 축적하게 만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며 “실손보험은 공보험 부실에 따른 공포 마케팅으로 성장했지만 의료비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비급여를 팽창시켜 공보험의 보장성을 답보시키고 비필수 영역으로의 의사 유출을 초래해 필수의료를 무너뜨리는 주원인이다. 민간보험 활성화가 아니라 통제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실손보험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 오직 민간보험을 위한 의료 민영화 정책인 보험업법 개정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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