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혈우병약 헴제닉스 이어 A형 록타비안 미국·유럽 허가
약가만 250만~350만 달러…국내 도입 시 사회적 합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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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최원석 기자] 혈우병 치료 분야의 최대 화두인 ‘원-샷’ 치료제가 글로벌 빅마켓 진입 준비를 마쳤다.

B형 혈우병 원-샷 치료제인 헴제닉스(성분명 에트라나코진 데자파르보벡)에 이어 A형 혈우병 원-샷 치료제 록타비안(발록토코진 록사파르보벡)까지 미국과 유럽의 시판허가를 획득한 것.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했던 혈우병 환자가 질환의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치료제가 시장에 나왔다는 평가다. 다만 한화로 30~40억 원에 달하는 약가 탓에 환자 접근성에 대한 국가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혈우병은 환자 수가 국내에만 2,500명 수준으로 기존 초고가 희귀질환 치료제에 비해 규모가 커 단순 비용효과성 판단을 넘어 사회적으로 합의된 새로운 제도가 요원하다.

≫ 록타비안, 지난해 8월 EMA 이어 6월 FDA 허가…약제비 290만 달러 예상

지난 6월 30일(현지시간) 미국식품의약국(FDA)는 바이오마린이 개발한 중증 성인 A형 혈우병 치료제 록타비안을 승인했다.

지난해 8월 유럽의약품청(EMA)의 조건부 허가를 획득한 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시장 진입 조건을 갖춘 것.

A형 혈우병은 혈액 응고에 필수적인 제8 응고인자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록타비안은 아데노바이러스 혈청형5(AAV5)를 통해 기능성 유전자를 간 세포에 전달해 세포에게 응고 인자를 만들도록 유도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승인은 록타비안의 GENEr8-1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132명의 중증 A형 혈우병 환자가 참여한 이 연구의 2년 평가 결과, 제8 응고인자 활동의 중앙값이 6~39%인 경증 혈우병 수준으로 유지됐으며 기준선 대비 출혈 사건이 84.5% 감소했다.

또한 참가자의 80% 이상이 치료가 필요한 출혈 사건이 없었고, 외인성 제8 응고인자 평균 사용이 기준선 대비 98% 감소했다.

2년이 지난 뒤 중증 A형 혈우병 수준의 제8 응고인자 활성을 보인 환자는 전체의 4.5%에 불과했으며 9.2%가 중등도의 활성 수준을 보였다. 59.8%는 경증 활성이었으며 26.5%는 정상인 범위 수준까지 진입했다.

알라닌 아미노트랜스퍼라제 수치 상승은 치료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었으며 이는 전체의 88.8%에서 나타났다. 해당 수치 상승은 29%에서 2년 동안 지속됐다. 또 다른 부작용은 두통(38.1%), 메스꺼움(37.3%), 아스파르테이트 아미노트랜스퍼라제 증가(35.1%) 등이었다.

이 결과는 전체 혈우병 환자의 70%가량을 차지하는 A형 혈우병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약물을 일주일에 4회까지 투여해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이 문제다. 바이오마린은 미국 시장에서 록타비안의 약제비를 290만 달러(한화 38억 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매년 80만 달러에 달하는 기존 약물의 연간 약제비를 수년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비영리단체인 임상경제검토연구소(ICER)가 책정한 록타비안의 비용효과성 달성 약가 상한선 196만 달러에 비해 50%가량 높은 수준이다. ICER는 록타비안이 환자에게 기존 약물로부터의 자유를 줄 수 있는 정도나 기간 등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평가한 바 있다.

현재 국내에서 A형 혈우병을 1주 4회 요법인 애드베이트로 치료할 경우 연간 비용이 2억2,000만 원 수준, 월 1회 요법인 헴리브라로 치료할 경우 4억3,000만 원 수준의 비용이 발생한다.

록타비안의 미국 약가를 감안할 때 국내에서도 15억 원 이상의 가격이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 헴제닉스, 지난해 11월 FDA·12월 EMA 연이어 허가 획득

전체 환자의 15%를 차지한다고 알려진 B형 혈우병은 원-샷 치료제가 A형 혈우병보다 먼저 빅마켓 허가를 획득했다.

CLS베링이 개발한 중증 B형 혈우병 치료제 헴제닉스가 지난해 11월 FDA에 이어 12월에는 EMA 조건부 허가까지 획득한 것.

B형 혈우병은 제9 응고인자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다. 헴제닉스 또한 AAV5를 이용해 제9 응고인자를 생성토록 유도하는 유전자를 간세포에 전달하는 기전이다.

투여된 헴제닉스 약물은 세포에는 남아있지만, DNA에는 통합되지 않으면서 장기적, 혹은 영구적인 혈우병 치료를 기대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승인은 중등도~중증 B형 혈우병 남성 환자 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단일군, 공개라벨 임상 3상인 HOPE-B 연구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연구 결과 참여 환자들은 헴제닉스 투여 후 제9 응고인자 활성이 6개월에 39%였고 2년까지 36.7%로 유지했다. 투여 후 7~18개월 사이의 모든 출혈에 대한 조정된 연간 출혈 또한 투약 전 관찰기간에 비해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헴제닉스 투여 환자 54명 가운데 51명인 94%가 투여 이전에 사용하던 기존 치료제 투약을 하지 않았다.

5% 이상에서 발생한 부작용은 간 효소 상승, 두통, 특정 혈액효소 수치 상승, 독감 유사 증상, 주입 관련 반응, 피로 등이었다. 9명의 환자에게는 간 효소 상승으로 면역억제제가 투여됐다.

이 같은 연구 결과와 시판 승인에도 헴제닉스 역시 높은 약가가 걸림돌이 된다. 약제비가 350만 달러(46억 원) 수준으로 록타비안 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연간 120회 투여해야하는 기존 B형 혈우병 치료제 베네픽스가 국내에서 연간 2억7,000만 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헴제닉스 또한 국내 도입 시 15억 원은 충분히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 약가만 250만~350만 달러…국내 도입 시 사회적 합의 필요

록타비안과 헴제닉스는 평생 약물을 투약해야 하는 A형, B형 혈우병 환자에게 질환으로부터의 자유를 줄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해당 원-샷 치료제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국가 차원의 지원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소요되고 있는 비용을 한 번에 지불하는 개념으로 비용효과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국가 지원의 근거가 될 공산이다.

최근 20억 원에 달하는 척수성 근위축증 원-샷 치료제 졸겐스마(성분명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가 국민건강보험에 적용되는 등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혈우병 환자 수는 2,500명 수준으로 희귀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에 비해 규모가 크다. 비용효과성을 넘어 절대 규모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록타비안과 헴제닉스는 졸겐스마와 달리 기존 대체 치료제도 존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혈우병 원-샷 치료제에 대한 환자의 접근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합의에 의한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면 현재의 여건에서 환자들이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투약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국내 혈우병 치료제 업계 관계자는 <메디코파마뉴스>와의 통화에서 “혈우병 환자에 현재의 지원도 타 질환에 비해 높다는 지적이 있다”며 “원-샷 치료제가 해외 시장에서 판매되고 국내에도 도입된다면 정부 지원 목소리가 나오겠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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