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의학회, 중증 정신질환자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조현병학회, 급성기 입원 환경 개선 등 제도 개선 필요
신현영 의원, 정신장애인 사법입원제 TF 도입 검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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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최근 과거 정신질환을 진단 받은 사람들의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의료계가 정신질환 관리의 시스템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국가책임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면서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흉기를 휘두른 범인 대부분이 정신질환을 호소하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구속된 조선은 경찰 조사에서 ‘우울증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선은 2013년도부터 현재까지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았으나 최근 3년 동안 치료를 중단해 왔다.

이와 함께 ‘사회공포증’ 진단도 함께 받았다. 사회공포증은 대인기피증이 보다 심화한 증세로 조현성 인격장애를 판단하기 전 단계의 진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원종의 체포 직후부터 줄곧 ‘자신을 해하려 하는 스토킹 집단에 속한 사람을 살해하고 이를 통해 그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보건복지부와 법무부에서는 정신질환 입원 제도와 외래 치료 지원 제도를 검토·개선하기 위한 합동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의료계도 이에 동참해 한 목소리로 중증 정신질환 관리의 시스템 개선을 촉구했다.

≫ 醫, 2016년 개정 정신건강법 인권 강화 취지는 공감…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지난 2016년 본인 동의 없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 위헌으로 판결되고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돼 2017년 시행됐다.

이에 따라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졌다. 강제로 입원시키려면 우리나라에서는 2명 이상의 보호자가 신청해야 하며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 한다. 가족인 보호의무자가 1차 책임자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강제 입원)을 판사가 결정하며 영국과 호주도 정신건강심판원이 정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사건 발생 초기 사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분명히 파악될 때까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서현역 피의자는 3년간 치료를 중단했고 피해망상이 범행의 원인으로 발표된 만큼 이러한 비극의 예방과 사후관리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2016년에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인권 강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치료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을 입원의 필수요건으로 법제화하는 변화는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될 경우 적절한 치료가 어려워 사고가 증가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거듭 표명했다”며 “이제 법과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비극의 예방과 사후관리를 위한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없이 조기에 치료받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의료-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회는 이번 사고 직후 법무부와 복지부가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제도 변화를 추진하기로 한 결정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회는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요청한다”며 “정신질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 이송제도를 포함한 법과 제도의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는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들어와도 경찰과 지자체에서 전국 통계조차 집계하지 않으며 병원전단계와 이송 관리가 미비한 실정”이라면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는 중증 정신질환의 입원 결정 등 무거운 부담을 가족에게만 지우는 제도다. 폐지를 적극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암센터나 아토피센터 등처럼 거점의료기관에 조현병 조기/집중치료 센터 설립·운영을 지원해야 한다”며 “환자들이 퇴원 후 외래치료와 체계적 재활을 통해 사회에 건강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사례관리 ▲의료기관 외래기반 정신사회적 중재 및 사례관리 ▲낮병원 ▲정신재활시설 ▲주거시설 ▲동료지원 등을 활성화해 지역사회에서 회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외에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 사건에 직·간접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에 노출된 국민들의 정신건강 보호 ▲폭력성이 높은 일부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법무부 관장 법정신의학 시스템의 적극 관리 ▲청소년-청년기 정신건강 관리 특별 지원 체계 신설·강화 등을 주문했다.

대한조현병학회도 최근 성명을 내고 질병의 급성기 입원 환경 개선과 외래 유지치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조현병학회는 “조현병을 범죄 원인으로 단정 짓지 말아달라. 조현병의 의료 및 사회경제적 부담은 매우 크지만 초기에 집중적인 치료와 관리로 회복이 가능한 질병”이라며 “하지만 조현병 치료, 관리, 연구에 투입되는 재정은 다른 주요 질병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조현병은 적정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 부담은 더 커지게 되는 만큼 정부와 보건당국은 조현병 치료와 관리를 위한 의료기관 및 지역사회기관에 적정한 재정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학회의 입장이다.

학회는 “최근 정신질환 관련 사건들 이전에도 조현병 치료를 위한 입원은 쉽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까다로운 입원 절차와 더불어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상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낮은 의료수가는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더욱 심각해 정신응급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 숫자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병상 수 감소가 가속화되면서 결국 환자들이 적정 치료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차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정신응급 또는 급성기 정신질환 상태 환자가 안정적으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수가를 적정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정신병적 증상이 심하면 병식이 약해져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의료적 필요성에 의해 환자 동의가 없어도 비자의입원이 필요하다”며 “보호의무자 동의 없이도 법원 판단에 의해 필요한 입원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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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증 정신질환도 필수의료, 전반적인 정신의료 ‘시스템 개선’ 촉구

국회도 정신질환 관리의 시스템 개선에 발 벗고 나섰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잇따르는 흉기 난동 사건과 관련해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신현영은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과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가해자의 정신질환 병력이 알려지며 중증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만 낙인찍는 인식이 더 강화될까 우려스럽다”면서 “전반적인 정신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질환자의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보호의무자 제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자 조기 발견, 조기 치료, 입원치료, 재활과 사회 복귀까지 일련의 과정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거나 자타해 위험이 높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면 빠르게 입원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입원제도 전반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 의원은 법무부의 사법입원제 검토와 관련해 구체적인 대책과 계획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 의원은 “환자의 인권 보호 문제와 더불어 의료계와 법조계의 전문성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열악해 국민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며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신속하게 심리할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이 사법기관과 의료계에 갖춰질 수 있도록 전문성 강화 기전을 비롯한 구체적인 대책과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원 취지가 충분히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인권 존중에 대한 보완책도 세심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단체, 가족단체 등 당사자들과의 소통과 의견청취 과정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며 “현재 보호입원, 입원적합성심사제도 등이 취지에 맞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제도 보완을 위해 기존 제도의 철저한 분석과 객관적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증 정신질환 진료 영역은 ‘필수의료’의 한 분야다. 의료진 기피 현상, 이탈현상이 심화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할 때”라며 “중증 정신질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 등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 치료병원에 대한 지원책을 포함해 국가가 기초설계부터 다시 단단하게 재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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