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 한방 난임치료 과학적 유효성 無…‘혈세 낭비’ 지적
韓, 지자체 사업서 성과 이미 검증…“의협, 의사패권주의 버려야”

[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한방 난임치료 지원을 지자체에서 국가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의료계는 한방 난임치료에 대한 과학적 유효성이 없는데다 유산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한방 난임치료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다. 반면 한의계는 이미 수차례 지자체 시범사업으로 효과가 검증됐다며 의사협회는 ‘의사패권주의’를 버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는 최근 본회의를 열고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난임 극복 지원사업에 한방 난임 치료비 지원을 포함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의약 난임치료에 관한 기준을 정해 고시할 수 있도록 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동안 인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조례를 통해 지원하고 있던 한방 난임치료를 전국으로 확대 시행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이에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지난 30일 의협 회관에서 대한산부인과학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한방 난임치료지원법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대한산부인과학회를 대표해 참석한 최영식 연세의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한방 난임치료가 난임부부의 임신율을 높인다는 근거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산의 위험을 높임으로써 모체와 태아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난임부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객관적 연구 및 자료 확보 및 투명한 공개가 선행되어야 하며 해당 근거가 없는 한방 난임치료비 지원에 대한 법률안은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식 교수는 한방 난임치료비 지원 법안 철회를 주장하는 근거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9년 한방 난임치료의 근거 확보를 위해 동국대일산한방병원, 강동경희대병원, 원광대광주한방병원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다.

복지부는 한방치료가 난임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6억2,000만 원의 연구비를 들여 동국대일산한방병원 김동일 교수에 의뢰해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김 교수팀은 2015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강동경희대병원, 원광대광주한방병원과 함께 임상연구를 진행했다.

해당 연구는 20~44세 여성 100명(실제 참여는 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7주기(7개월)간 총 13명이 임신해 임신율은 14.4%, 이 중 7명이 출산해 출산율은 7.8%로 보고됐다.

최영식 교수는 “김 교수팀은 2015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강동경희대병원, 원광대광주한방병원과 함께 임상연구를 진행했는데 상당한 연구비를 투입해서 전향적으로 계획해 시행한 임상시험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조군(control group)을 생략한 채 연구를 진행해 과학적으로 효과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조차도 설정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의 의료통계학자인 잭 윌킨슨(Jack Wilkinson)이 해당 팀의 연구에 대한 저널의 검토(peer review) 의뢰를 받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해당 한방난임치료 연구는 ‘과학이 아니고 임상 연구가 아니며 터무니없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해 기사화된 사실만 봐도 해당 연구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진행됐고 의미 없는 결과를 발표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최 교수는 해당 연구가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가 미미한 것 뿐만 아니라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원인불명의 난임으로 진단된 20~44세의 대상 여성 100명에서 중도 탈락한 10명을 제외한 90명 중 13명이 임신해 임신율은 14.4%였고 그 중 7명이 출산해 출산율은 7.78%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원인불명 난임으로 진단된 부부에서 같은 기간 기대할 수 있는 자연임신율과 큰 차이가 없는 수치라는 게 학회의 분석이다.

최 교수는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6.2%(6/13명)의 여성이 유산했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임신 후의 유산율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결과로 한방 난임치료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며 “추가적으로 현재까지 발표된 지자체 한방 난임치료 지원사업의 결과를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검토한 결과들을 분석 발표한 결과를 보더라도 상당히 높은 유산율을 보인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여러가지 원료를 포함하는 한방제제의 특성상 모체와 태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료가 포함된 사례도 보고되고 있고 각종 원료에 대한 여러가지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에 대한 관리 기준이 부족해 한방제제가 오히려 모체와 태아에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한방치료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해 이를 국민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개하고 그 이후 비용/편익을 분석해 그 효용에 따라 적절한 치료 적응증을 명시하는 작업을 통해 국민의 세금이 근거없이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것을 막고 난임부부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만을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교웅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도 한방 난임치료의 안전성을 크게 우려했다.

김교웅 위원장은 “김동일 교수가 발표한 임상 연구에서 총 13명이 임신했으나 절반에 가까운 6명이 출산에 실패한 매우 의아한 결과다. 임신한 참여자들은 평균 30대 초반으로 유산 위험이 높은 연령도 아니었다”며 “비정상적인 유산율이 나타났지만 대조군이 없는 연구여서 한약의 효과나 유산위험을 평가하기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한약 복용 시기에 따른 유산 및 사산 비율을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를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연세대 원주의대 김춘배 교수팀이 한방 난임사업에 참여해 임신한 118명을 조사한 결과 복용 중 또는 3개월 이내에 임신한 87명 중 2명이 사산하고 24명이 유산했다.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임신한 31명 중에는 3명만 유산했고 사산은 없었다.

김동일 교수의 연구 사례에서도 한약 복용 중이거나 3개월 이내에 임신한 사람은 총 13명이었는데 이 중 6명이 출산에 실패했다.

김 위원장은 “두 데이터를 종합하면 임신 시기가 복용 후 3개월 이내이면 3개월 이후에 비해 출산 실패율이 3.6배나 된다. 이 차이는 통계 분석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사업기간 종료로 조사하지 않은 임산부들의 출산 성공 여부, 한방 난임사업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현재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추적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는 책임있는 자세로 한방난임치료의 안전성을 엄격히 규명해 달라”며 “한방 난임치료의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지자체 지원사업의 데이터를 대한산부인과학회에 제공해주면 한약의 안전성 여부를 규명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해당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의료계는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국가적 시책을 시행하기 위한 연구목적상 수행된 연구결과가 과학적으로 유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방 난임 치료에 혈세를 투입해 지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복지부는 최소한 기존 연구에 대한 사후추적 연구나 적절한 대조평가 등을 거쳐 한방 난임 치료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점을 반드시 소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방 난임 치료에 주로 쓰이는 목단피로 인한 자연유산율이 3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이를 알면서도 침묵할 수는 없다”며 “성분도 모르고 정확한 근거도 없는 한방 난임치료가 안착하지 않도록 강경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 한의계, 한의약 난임사업 성과 이미 검증…“직역 이기주의만 매몰된 양의계”

이처럼 의료계가 한방 난임치료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며 철회를 촉구하자 한의계는 직역 이기주의라며 맞대응에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지난 30일 “대한민국 초저출산 상황과 난임부부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외면한 채 모자보건법에 명시한 한의약 난임사업을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국민과 언론을 호도하기에 급급한 일부 양의사단체의 한심한 작태에 우려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어 “한의약 난임치료는 십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수많은 사업을 통해 검증됐으며 보건복지부의 연구 결과에서도 양방의 인공수정보다 높은 14.44%의 성공률을 보였다”면서 “난임부부 역시 96.8% 응답률로 정부 차원의 한의 난임치료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건강한 출산을 지원하고자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추진한 입법 활동조차 왜곡된 자료와 극단적 직역이기주의의 행태로 딴지를 놓고 방해하는 일부 양의사단체의 행태는 국민의 아픔과 대한민국의 미래마저도 오직 자신의 눈앞에 놓인 밥그릇으로만 보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선”이라며 “풍전등화에 놓인 대한민국 출산율 반등을 위해서라도 양의계는 전향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특히 한의사협회는 의료계에 ‘의사패권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의사협회는 “한의약 난임치료를 폄훼하기 전에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임신 성공률 0%를 기록한 의료기관들에 대해 자성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며 “이제는 의사만이 모든 것을 해야한다는 ‘의사패권주의’를 내려놓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생각하는 참의료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메디코파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