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 병원 사직 전공의 대정부 호소문…“소청과 오픈런, 정부 방임 때문”
“필수의료 이미 붕괴 중…증원·필수의료 패키지 ‘허황된 꿈’”
“월 100만원 보조 등 땜질 처방…필수의료 특수성 반영한 정책 필요”

▲ 유토이미지
▲ 유토이미지

[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의대 증원 사태 이후 그동안 침묵했던 사직 전공의들이 한 달여 만에 입을 열었다. 사직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2,000명 증원 대신 필수의료를 살려달라며 호소한 것이다. 이들은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은 정부 방임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월 100만 원 보조 등의 단기적인 대책 대신 필수의료과의 특수성을 반영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의대 정원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18개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다 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50명여 명은 지난 28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하기 전 10년 이상 임상 경력을 가진 전문의들도 낮은 수가로 인해 소청과 진료를 포기하고 상급병원은 적자라는 이유로 전문의 고용을 늘리지 않는 현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며 “늘어나는 의료소송과 신고에 폐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와의 눈맞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회복해 지어주는 미소, 매일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람 등 저울로 잴 수 없는 가치들을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 소아는 저희가 살려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힘든 수련도 버텨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5년 전 전체 840명이었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던 소아청소년과가 지금은 2,000명 정도는 증원을 해야 충원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되는 낙수과가 됐다”며 “작년부터 시작된 소아과 오픈런 사태는 원가보다 낮은 수가와 환자 수 감소로 인해 소청과들이 폐업하면서 이미 예견된 사태였으나 그동안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았고 소청과 전문의들의 호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와 부모들의 몫이 됐다”며 “이후에 발표된 다양한 소아의료 관련 정책들을 보며 조금은 개선될 것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었으나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2,000명 의대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낙수과라는 오명과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저희의 희망과 자긍심마저 잃게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소청과 의사가 부족하게 된 이유로 이미 배출된 전문의들이 소청과 진료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정책과 정부의 방임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소청과는 대부분 국가가 정한 급여체계 안의 진료를 하며 영유아 검진 등 각종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지만 오히려 만년 적자로 개원가에서도 대학병원에서도 생존할 수 없었다”며 “성인과 달리 소아진료는 장시간과 많은 인력, 기술을 요하지만 현재의 수가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반면에 나날이 증가하는 의료소송으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진료를 하다 보니 대다수의 소청과 전문의들이 뜻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진료과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0명의 의대생 중 일부가 소청과 전문의가 되어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정책이 될 것”이라며 “2,000명 중 극소수를 10년 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저평가된 수가의 개선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숙련된 전문의 유입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 수가 감소할 수 밖에 없지만 단 1명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필수의료인 소청과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수가 위주의 개선이 아닌 진료실과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보전을 위한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직 전공의들은 “정부가 제시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고질적인 의료계의 문제들을 지속하는 패키지라는 명칭에 걸맞다. 지금까지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성숙한 협의 과정 없이 막대한 세금으로 1년 안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며 지금까지 반복된 실책의 연장”이라면서 “2,000명의 진로와 수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릴 의료비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와 이념을 떠나 깊은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소청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월 100만 원의 보조금, 일시적인 수가 인상들을 포함해 매일 검증 없이 쏟아내는 정책들은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며 “지방의 의대생을 증원해도 해당 지역의 근무 또는 환자 수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일시적인 눈가림일 뿐 지속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는 2,000명의 무리한 증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증원의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조속히 실시해 더 이상의 의료 붕괴를 막아야 한다”며 “동반해 쏟아내고 있는 단발성 정책이 아닌 소청과를 비롯해 붕괴를 앞둔 필수의료과들의 특수성에 걸맞은 정책과 보상을 통해 필수의료를 소생시킬 정책을 논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사태와 관련 정부의 소통 방식도 비난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필수의료의 붕괴를 앞당기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고자 했으나 정부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저희들을 밥그릇을 뺏길까 두려워하는 집단으로, 환자의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로 언론을 통해 호도하고 있다”면서 “의사 면허 취소, 형사 고발 등으로 압박하며 잘못된 정책 하에서 일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여기서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소청과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고 있는 저희는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깊은 고민 끝에 사직을 결정했다”며 “이번 사태로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더 나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아들, 제자리를 잃어가는 선배 의사들과 동료들,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하는 언론을 보며 저희의 가치와 미래는 어디에 잇을지 무력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저작권자 © 메디코파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