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도입 국민청원 9일 종료, 보건복지 분야 해부
코로나 청원 제외, 국시거부 의대생 구제 반대 청원 1위
의사파업・간호법제정 뒤이어…의료사고 호소글도 잇따라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현대판 신문고’라고 불리는 국민청원에서 보건복지 분야 중 국민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사안은 코로나19 시국 속에 벌어진 의사 파업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 반대부터 의료법 8조 개정 등이 1, 2위를 차지했으며, 판문점 귀순병사로 인해 재조명된 열악한 권역외상센터 지원, 간호법 제정 등도 상위권에 포진했다.

국민청원은 지난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신설됐다.

청원글은 30일 이내 100명의 사전 동의를 받으면 관리자 검토 하에 청원게시판에 내용이 공개된다. 글이 알려진 시점으로부터 ‘30일 이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의 경우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변을 한다. 이 중 일부는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총 110만8,471건의 청원이 올라왔으며, 총 5억1,600만 명이 방문했다. 하루 방문자 수는 평균 31만1,800만 명으로, 일일 평균 670건의 청원이 게시된 것이다.

이 중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 추천을 받은 청원은 총 285건이었다.

<메디코파마뉴스>는 지난 9일 낮 12시 공식 종료된 국민청원 가운데 국민들이 5년 간 최대 관심사를 보였던 보건정책을 상·하편으로 나눠 분석했다.

다만, 전 국민적 관심 사안이었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게시글은 이번 집계에서 제외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北 귀순병사로 재조명된 열악한 권역외상센터, 제도적 지원 절실

지난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 중 부상을 당한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계기로 권역외상센터 개념이 국내에 정착했다면 2017년 11월 북한군 판문점 귀순병사의 치료는 열악한 권역외상센터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국민청원 게시판에 ‘권역외상센터(이국종 교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이라는 글이 게재됐는데 2017년 11월 17일부터 한 달 동안 총 28만1,985명의 동의를 받아 정부의 답변을 이끌어낸 것이다.

지난 2017년 11월 13일, 조선인민군 육군 소속 오청성 하전사가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다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인민군 육군에게 5발의 총상을 당한 채로 대한민국 육군에 구조됐다.

당시 귀순 병사는 대한민국에서는 흔치 않은 총상을 당했음에도 국군병원이 아닌 아주대병원으로 이송해 수술 받았다.

주치의는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었던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경력이 있는 이국종 교수.

당시 이 교수는 귀순병사 수술 집도 후 수차례의 언론 브리핑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귀순병사에 대한 질병 기록 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이에 대해 일부 야당 의원들은 ‘인격테러범’을 운운하며 의료법 위반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난에 이국종 교수는 브리핑에서 권역외상센터의 적자 현황과 위기 등 수많은 쟁점에 대해 간곡하게 호소했다.

이 교수는 “귀순병이 다치고 나서 주한미8군의 헬기가 환자를 이송하는데 30분,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마치고 수술방에 들어가는데 또 30분이 걸렸다”며 “이게 제가 미국과 영국, 일본에서 배웠던 표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터무니 없이 낮은 수가와 삭감에 시달리면서도 권역외상센터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부족한 인원으로 골드타임을 사수하려고 애쓰는 의료진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중증외상센터는 지속가능하지도,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 교수는 그 해 9월 아주대학교 소식지를 통해 “원칙대로 환자를 처치했고 써야 할 약품과 기기를 써 필요한 만큼 수술했지만 교수별 진료실적에 기반을 둔 원가분석에서 연간 10억 원의 적자를 만드는 원흉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후에도 이 교수는 국회 간담회 등에 참석해 작심하고 권역외상센터의 문제점을 호소했다.

이 교수의 이 같은 발언은 국민 여론도 움직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는 글이 게재됐고 결국 정부의 답변까지 이끌어낸 것이다.

청원인은 “소말리아 피랍 사건, 북한군 판문점 귀순사건, 경주・포항 지진 등을 예방하는 것은 국민안전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적으로도 당연하게 중요한 일이지만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우리는 휴전 국가로써 세계에서 가장 전쟁발발 위험성이 높은 국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총상, 파편상 등 중증외상을 치료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번 북한군 귀순 사건의 주치의인 이국종 교수의 왼쪽 눈은 실명 상태로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며 “이국종 교수 뿐만 아니라 타 지역 권역외상센터도 소속 병원의 눈치를 본다고 한다. 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의 적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응급환자를 살리기 위해 당직실에서 10분 20분씩 쪽잠을 자는 이들에게, 집에 일주일에 한번 갈까 말까 한 이들에게, 우리는 비난이 아니라 제도적 문제의 수정을 이야기 해야 한다”며 “의사들이 환자를 눈치 보지 않고 치료할 수 있게, 하루에 한 번은 잠을 잘 수 있게, 최소 보편적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청한다”고 밝혔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 보건의료계 뜨거운 감자, 간호법 제정도 국민청원에 올라와

현재 보건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 제정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3일 올라온 ‘저는 국민 옆에 남고 싶은 간호사입니다. 간호법 제정이 필요합니다’라는 청원은 한 달 만에 24만7,385명이 동의했다.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과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은 현행 의료법에서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간호·조산에 대한 내용을 이관해 독립적인 법률로 제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간호법 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해당 법안들은 지난해 하반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깜짝 상정되며 보건의료계 화두로 떠올랐다.

의사 단체와 간호사 단체는 연일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와 집회를 하며 간호법 입법 추진을 둘러싼 찬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급기야 간호계는 보건의료, 노동, 법률, 시민사회, 소비자, 종교 분야 22개 단체가 참여하는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을 출범하며 간호법 제정 촉구에 나섰다.

의료계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간호조무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10개 보건의료단체가 간호법 저지를 위해 공동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간호법 철회를 촉구했다.

간호법 찬반 논쟁은 세계 직역단체로까지 확대됐다. 국제간호협의회(ICN)와 세계의사회(WMA)까지 가세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간호대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우리나라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 연수 5.9년, 평균 퇴직 연령 34세, 1년 미만 신규 간호사 이직 비율 30.5%인 현실을 설명하며, 그 이유가 간호사의 업무 영역, 역할의 기준이 될 간호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간호사의 숫자는 인구 1,000명당 3.8명으로 OECD 평균 8.9명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래 진료 횟수는 OECD 국가 중 1위, 평균입원 일수는 OECD 국가 평균 대비 2.5배로 과중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며 신규 간호사 절반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다.

청원인은 “법에 규정된 간호사의 역할은 ‘진료보조 및 요양상의 간호’로 1951년에 제정된 국민의료법 안에 딱 한 줄로 쓰여 있는 것이 전부”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과 다양화되는 간호사의 역할과 달리, 간호사 관련 모법은 60년 전 일제강점기 시대 법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70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의료법에서는 간호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재는 간호사들이 담당하는 업무가 점점 다양화,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다”며 “따라서 간호법을 제정해 간호사의 업무 규정을 명확히 하고 간호사의 전문성을 확보해주는 한편,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OECD 국가 중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기에 간호법을 제정해 전문화된 간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며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간호사의 업무 안정 및 근무 환경 개선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영향은 결국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제주 영리병원 국가 매수, 편도수술 의료사고, 부산 산부인과 신생아 두개골 손상 사건 진상규명, 경남 양산시 산부인과 의료사고, 신포괄수가제 항암약품 급여 폐지 반대, 무리한 유도분만으로 인한 태아 사망, 공공의대 정책 철회 등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며 정부의 답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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